이노근 < 서울 노원구청장 lng5238@hanmail.net >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사람들은 머릿속에 이런 저런 새해 설계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금년은 예년과 달리 소망하는 일들을 불가피하게 수정 또는 축소해야 할 형편이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파고가 높아 국가 경제가 위기상황이고 보니 피부에 와 닿는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려운 경제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지혜를 모아도 시원찮은 판에 정치권은 서민들의 성난 목소리가 들리는지 마는지 서로 힘자랑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 힘자랑이라 말하니 힘센 동물이 떠오른다. 마침 금년이 소띠 해다. 농부를 도와 열심히 논밭을 가는 소를 통해 우리는 우직과 근면,순한 짐승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투우경기를 보면 순한 소도 적의 공격 앞에서는 뾰족한 뿔로 들이받고 발길질을 하며 자신을 방어한다. 하지만 평상시엔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뿔을 좌우로 흔들며 위엄을 지킨다. 힘을 바탕으로 뿔을 무기로 삼는 황소지만 함부로 그 무기를 뽐내지 않는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 상대에게 위협을 줄 뿐 선제공격을 삼간다. 그것만으로 평화를 유지한다.

힘의 상대적 개념으로 꾀(지혜)가 많은 동물이 있다. 바로 여우다. 우리는 여우를 꾀가 많은 동물로 여긴다. 실제 여우는 귀가 밝고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사람들은 수레를 끌고 얼음이 언 강을 건너기 전 얼음의 두께를 가늠하기 위해 먼저 여우를 건너게 했다고 한다. 얼음 위를 기어가던 여우는 얼음의 두께가 얇아 위협을 느끼면 바로 되돌아올 정도로 청력이 좋다. 여우는 뛰어난 청력과 영리한 두뇌가 무기다. 그렇다고 함부로 잔꾀를 부리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잔재주를 뽐내다가는 제 꾀에 빠져 강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화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생존방식이 아주 대조적인 황소와 여우의 예를 통해 황소는 힘이 세다 해서 그 힘을 믿고 뿔을 아무 때나 휘두르지 않고 자제할 줄 알며,여우는 청력이 뛰어나고 영리하다 하여 잔꾀나 술수를 함부로 부리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종족을 보존해 가는 생존의 지혜를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봤다.

우리는 이제 해가 바뀌어 나이 한 살씩을 더 먹었다. 나이의 무게만큼이나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경제위기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우리 국민은 오일쇼크나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낸 저력을 갖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힘자랑 꾀자랑을 통한 대결이 아닌 서로를 양보하며 이해와 격려,이웃을 돌아보는 자세가 더욱 절실하다. 특히 정치권은 황소와 여우의 지혜를 교훈 삼아 새해 힘들고 어려운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