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책'에 신뢰도 상실 … 원칙서면 자신있게 밀어붙여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 닷새 뒤인 지난 9월19일,영국의 HSBC는 외환은행 인수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세계 금융시장의 자산가치 변화를 감안했을 때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HSBC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이로써 외국 자본의 '먹튀'(싼 값에 사서 큰 이익을 챙긴 뒤 떠나는 행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미국계 펀드 론스타의 한국 탈출은 좌절됐다. 외환은행 주가는 HSBC 인수 제안가의 3분의 1 수준인 6000원대로 떨어져 매각은 당분간 어려워졌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고소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단견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큰 시각으로 보면 외국 자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부정적 인식 또는 적대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 많다. 한국에 대한 외국 자본의 신용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외화 차입 때 가산금리의 기준이 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스프레드가 9월 중순 2%대에서 한 달 뒤 7%까지 치솟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했더라면 한국의 신인도가 높아져 금융산업이 이 정도로 타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론스타가 HSBC의 막판 수정 제안을 거절해 결국 큰 손실을 입은 것 이상으로 우리도 피해를 봤다는 얘기다.

HSBC가 외환은행 지분 50.02%를 63억달러(주당 1만8000원)를 주고 론스타로부터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1년 전인 지난해 9월3일이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등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승인 여부를 검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노무현정부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상황이 바뀌어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취임 직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원만하게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문제가 촛불시위로 번지자 전 위원장은 6월 "외환은행 매각 문제에 있어 국민 정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7월 말 이후 금융위가 HSBC에 승인 시그널을 보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금융감독당국은 '재판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헐값 매각으로 판결이 내려지더라도(실제론 무죄로 판결) HSBC 매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외환은행 매각 실패는 금융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원칙을 세우고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줬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