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1995년 도입된 학부제가 드디어 폐지되고 학과제로 환원되리란 소식이다.

이미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학과제 복귀 현상이 증가해온데다,학부제 실시 대학에서도 학점 및 정원 제한을 두어 '무늬만'의 학부제를 운용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만큼,이번 교육과학부의 결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해도 지나친 해석은 아닐 듯 싶다.

실패하리란 것을 훤히 예상하고도 이상과 명분을 앞세워 밀어붙인 정책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던 피해자 입장이고 보니,이번의 결단을 향해서도 두손 들어 환영할 수만은 없기에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다.

학과제로 환원된다는 의미와 오늘날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 사이엔 메우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게다.

지난 목요일,4교시 학부 교양수업 시간에 실제로 일어났던 해프닝이다.

한 명은 원숭이로,다른 한 명은 여자로 분장한 두 명의 남학생이 300여명의 여학생으로 가득찬 강의실에 들어와 멋들어진 댄스 공연을 하곤 강단에서 내려왔다.

깜짝 공연에 초대된 여대생 관객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한 녀석은 고려대 2학년이고 다른 녀석은 가톨릭대 2학년이라 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무엇이더냐 물었더니 "그냥 너무 하고 싶어서"란 답이 돌아왔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을 듣고 보니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선생의 부적응을 그대로 노출한 것은 아닌지 자괴감마저 들었다.

웃고 흘려버릴 수 있는 해프닝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학과제가 정답이냐 학부제가 대안이냐를 두고 소모적 논쟁을 벌여온 것 자체가 시행착오였던 만큼,그간 우리네 교육 환경 안팎에서 전개돼온 농축적 변화와 강력한 도전을 기억하면서,학과제로의 환원이 15년 전 상황으로 시계를 되돌려 놓는 것과 동일시되는 건 절대 사절한다.

이미 학문 영역에 따라선 학부제의 틀을 뛰어넘어 융합 또는 통섭이 활발히 이뤄지는 경우도 있고,학교에 따라선 조심스럽게 무(無)전공 혹은 자기설계(self designed) 전공을 허용하는 상황인데다,의학 및 법학을 위시해 응용학문 중심으로 전문대학원 체제가 확대돼감에 따라 은근히 학부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분위기 또한 나타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물론 학부제 도입 이후 순수학문의 경우는 전반적인 전공 학생 수의 격감으로 인해 학문적 존속 자체를 위협받는 경우가 빈번했고,인기학과 대 비인기학과 간 양극화 및 불균형 문제는 당장의 합리적 학사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보다 장기적으로는 국가적 차원의 원활한 인력수급에도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리란 예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그렇다고 학과제 복귀가 학부제로 인해 초래됐던 제반 문제를 일시에 치료해줄 만병통치약이라 기대함 또한 경계할 일이다.

학부제 하에서 더욱 심화된 기초학문의 위기는 기초학문 스스로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고,강한 관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학 조직의 경직성 또한 극복 대상임이 분명하다.

희망컨대 이번의 학과제 부활만큼은 교육과학부의 진두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기보다는,각 대학의 자율성 및 학문영역의 특수성을 최대한 존중해 학과제와 학부제간의 유연한 균형을 이뤄가길 기대한다.

대학 편제는 온 국민의 절대적 관심사인 대입 전형과 직결된 사안이기에 대학 자율에 맡기기만은 어려운 상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학과제 복귀 과정에서는 교육과학부의 일관된 목소리보다 각 대학의 분방한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길 희망한다.

대학 스스로 책임지는 것도 연습과 훈련이 필수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