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금융감독위원회는 출발부터 문제가 많았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탄생해 졸지에 기업구조조정까지 떠맡았던 것이 오류의 시작이었다.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기업 생사 여탈권을 휘둘러 왔던 것은 아름다운 폭력의 추억이다.

IMF 각서를 이행하는,그래서 소위 새로운 제도와 관행을 이식하는 일종의 총독부 역할을 해왔던 것도 잊을 수 없는 달콤함이다.

총독부라는 말을 굳이 거부한다면 투기자본의 통로였다거나 혹은 시장을 통한 규율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새로운 권력기구였다는 표현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든 지난 10년간 정작 미국 월가에도 없는,월가식 금융시장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증권시장 만능론자들이 겹겹이 포진한 조직이 되고 말았다.

그 금융감독위원회가 정부의 금융정책까지 가져와 금융위원회로 재편되었다.

그러니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의 정수라고 할 금융시장을 관리 감독하는 권력조직에 오로지 기업 벌주기를 작심하고 있는 좌파들이 득실거렸다는 것이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주지 않는가 말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감독원과 더불어 대중의 반기업 정서를 부채질하면서 또 스스로 확대 재생산시킨 반기업 정서를 밑천 삼아 실로 짭짤한 규제 장사를 해왔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지난 10년의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을 한번 돌아보라.금융감독위원회가 한 일이라고는 벤처 거품 만들어 내면서 국가 자본을 낭비한 것, 그리고 소버린이니 뭐니 하는 외국 투기자본 끌어다 국내기업 등친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

시중은행은 모두 외국 자본에 경영권을 넘겼고 기업들로부터 고혈을 짜내면서 터무니없는 고배당이며 자사주 매입을 부추겨 증권시장을 자본조달 시장이 아닌 자본 갹출시장,다시 말해 상장을 미끼로 자릿세 뜯어먹는 돈먹는 하마로 만들어 낸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

그러니 새로 금융위원회를 맡으신 전광우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증권시장이 국가경제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한번 숫자로 따져 보시라.자본시장이 국민경제를 위해 얼마나 산업자금을 조달했는지,그리고 극소수의 창업자들이 대박을 터뜨리며 출자자본을 회수하도록 한 것 외에 다른 어떤 역할을 해냈는지 말이다.

세계에도 유례가 없는 무제한의 경영권 탈취 제도를 만들어 내고 결국에는 기업가 정신을 죽인 것 외엔 금융위원회가 한 일이 없다.

오로지 투기꾼을 위한,투기꾼에 의한,투기꾼의 증권 제도를 완성하는 데 지난 10년을 허송해왔던 것이다.

그나마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제도라도 만들어 보려는 법무부에 대해 볼멘소리나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금융위원회라면 그런 조직을 그대로 두어야 하나.

미국 기업들에도 허용되고 일본에도 있고 유럽 국가들에서는 보편적 경영권 방어제도라고 하는 것들을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못한다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디서 날아왔다는 것인지 설명하라.

논란이 많은 산업은행 민영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민영화 자금으로 KIF라는 정체불명의 중소기업 지원기금을 또 만들어 뒷주머니를 차고 싶다는 식이라면 관료들의 문전옥답 만들기는 정권이 바뀌어도 고칠 수 없는 고질병에 다름 아니라는 것인지.민영화로 돈이 들어오면 국고로 보내 나라 빚을 갚든지 해야지 왜 또 뒷주머니를 차는가 말이다.

투자자와 기업이 만나고,산업자금과 재산증식이 만나고,기업가 정신이 활발하게 살아나는 그런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을 지금 우리는 원하는 것이다.

말 잘듣는 산하 금융회사나 만지작거리라는 자리가 금융위원장인 것은 아니다.

전 위원장은 기업가 정신을 눌러왔던 온갖 족쇄들을 풀어 우리경제에 새로운 기풍이 살아나도록 하는 일에 매진하시길.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