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 <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화가 www.choisunho.com >

올 봄은 유난하다.봄인가 싶더니 눈보라가 치고,겨울같이 바람이 찬 날이 적지 않다.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하던가.

우리에게 봄이 왔다는 신호를 어김없이 보내 주는 것은 학교 입학식.유치원의 풋내를 막 떼어 버리고 엄마 손을 잡고 입학하는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의 발걸음이나,입시 공부에 찌들었던 대학 새내기의 상기된 눈빛이나 모두 즐겁고 설레긴 마찬가지다.시작은 언제나 아름답다.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진다.

1963년 3월 나는 충북 괴산군 청천초등학교에 입학했다.청천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적한 시골이다.입학식을 화폭에 담는다면 몇 명 안 되는 신입생에 교정의 일본식 적산가옥 건물,몇 칸의 교실,그리고 손바닥 만한 운동장이 배경의 전부였을 터다.

운동장 한 편에 서 있는 몇 그루 느티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따듯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읍내에서 불어오는 3월의 찬바람에 뒷동산 소나무가 우우 소리를 냈고,아이들은 좁은 어깨를 움츠리며 콧물을 훌쩍였다.나도 어머니가 가슴에 달아 준 손수건에 흘러 내리는 콧물을 연신 닦아 내렸다.마치 박수근 그림 속의 동생을 업고 서 있는 여자 아이같이 머리카락을 목덜미 위까지 반듯하게 한 일(一)자로 자른 계집애들 틈에 섞여 유년기 꿈 속 기억의 첫발을 디뎠다.

그 해 여름,큰형과 함께 학교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서 놀았다.그 시절 노는 일이라야 흙장난이나 철봉과 시소에 매달려 긴 여름 해를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나는 나무 막대기로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쓱쓱 그렸다.멕시코 풍의 망토를 걸치고 차양 넓은 모자에 선글라스로 제법 멋을 낸 신사 그림을 보고 형이 잘 그렸다며 칭찬했다.형의 칭찬에 힘을 얻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안방에 자리한 어머니 시집 혼수인 유리 옷장에 그 그림을 그렸다.거울 유리 뒷면에 주황색 안료가 칠해져 있어 송곳으로 그으면 안료가 떨어져 나가 선이 생기고 문을 닫으면 안이 어두워 자연스럽게 옷장 밖은 멋진 그림으로 되어 있었다.

그 날,나는 어머니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맞았다.하지만 그 사건은 나의 최초의 작품이자 화가로서의 꿈을 향한 첫 발자국이었다.선생님이 장래 꿈을 물었을 때 친구들은 선생님,간호사,대통령,군인,과학자 등 어린 꿈들이 별처럼 총총했지만 나는 예술가에 손을 들었다.그 때는 보릿고개에 밥 먹고 살기도 급급해 예술가가 무슨 일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화가가 된 지금,생각할수록 어린 꿈이 아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