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왔나? 조장들은 출석 체크해 봐요.

재규는 왜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나? 곧 수업 시작할 테니 다 자리에 앉으세요."

"교수님.1조는 2명이 아직 안 왔습니다."

"저기도 빈자리가 있는 것 같은데?" "아,왔는데요,잠깐 어디 들른다고 나갔습니다.

바로 들어옵니다."

분위기만 봐서는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의 학교 교실이다.

그러나 현실세계가 아니다.

인터넷 3차원(3D·입체) 가상현실세계인 '세컨드라이프'에서 진행되는 수업의 모습이다.

미국 린든랩이 2004년부터 인터넷에서 서비스 하는 세컨드라이프에서 대학교 정규 과정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 화제다.

중앙대 경영학과 위정현 교수는 이번 가을 학기에 경영학과 전공과목인 '마케팅조사론'과 '디지털경영전략론' 수업을 세컨드라이프에서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이지만 오프라인의 실제 수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프라인 강의실을 옮겨 놓은 것처럼 똑같은 강의실에서 학생과 교수가 각자의 분신인 아바타로 들어와 수업을 진행한다.

매주 요일을 정해놓고 수업이 이뤄지며 수업 시간도 2시간으로 실제와 비슷하다.

세컨드라이프에 접속해 중앙대 경영학과의 마케팅조사론 수업을 참관했다.

마케팅조사론 강의실은 세컨드라이프 내 코리아타운에 있다.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는 CMI코리아라는 8층짜리 건물 201호가 마케팅조사론 강의실이다.

코리아타운은 '애시드 크레비즈'라는 업체가 세컨드라이프에 토지를 구입해 세운 것으로 애시드 크레비즈가 지난 9월 이 지역에 중앙대 사회과학대학 건물과 똑같이 생긴 CMI코리아를 건립했다.

세컨드라이프 내에는 코리아타운 말고도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등 한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 다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강의가 진행되는 곳은 CMI코리아가 유일하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세컨드라이프 내 CMI코리아는 중앙대 건물과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곳에 모여 강의를 듣고 발표를 하고 친구들과 교수님을 만난다.

매주 화요일 열리는 위 교수의 수업을 참관하기 위해 CMI코리아 201호에 있는 강의실에 입실한 시간은 밤 9시가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곳이면 어디서든 접속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9시부터 11시까지 열리는 수업을 듣기 위해 마케팅조사론 수강 학생 32명은 모두 강의실에 들어왔다.

위 교수는 강의에 앞서 출석을 체크했다.

마케팅조사론은 32명의 학생이 4명씩 8개조로 나뉘어 세컨드라이프 내에서 조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날 수업시간에는 이제까지의 진행 상황과 성과를 점검했다.

"지난 한 주 동안 5조는 1007린든달러 벌었습니다."

5조의 발표가 있자마자 3조가 1600린든달러의 수입을,8조는 1576린든달러의 실적을 보고했다.

이어 2조가 2000린든달러를 벌었다고 발표하자 강의실에서는 일제히 "와~" 하는 소리가 나왔다.

반면 6조가 330린든달러를 벌었다고 발표하는 순간엔 "애개~"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나왔다.

조별 프로젝트는 세컨드라이프 내에 다양한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해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매출을 올리는 것이었다.

비즈니스의 내용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6조에서 경영학과 3학년 백진아 학생이 나와서 경과 보고를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발표했다.

6조는 처음에 가상현실세계에서의 결혼정보업체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온라인상의 정보 부족 및 사람들과의 연결이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사업 형태를 바꾸게 됐다고 보고했다.

백진아양은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 유저를 대상으로 한국 여행 안내를 해 주는 동영상을 제작해 판매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동영상 UCC 제작 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하는 사업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학생들의 발표가 이어지면서 수업 분위기도 달아올랐다.

흔히 온라인게임에서 채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지만 세컨드라이프에서는 마이크를 갖춰놓고 있으면 상대방과 대화가 가능하다.

가상현실세계의 수업이지만 실제 자신의 목소리로 발표와 질문을 한다.

강의실과 똑같이 생긴 강단에 나가 발표를 할 때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파워포인트로 오프라인처럼 똑같이 자료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강의실 전면에 띄워서 보여주면서 발표를 진행한다.

가상현실세계의 강의가 좋은 점은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점 말고도 많다.

우선 음식을 먹거나 다른 것을 하면서도 수업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내가 실제로 뭘 하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맥주를 마시는 아바타가 있는가 하면 모자를 쓰거나 머리에 특이한 깃털 장식을 한 아바타도 있었다.

하지만 아바타 조작이 쉽지 않고 예기치 않은 에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단점이다.

이 날 수업에서도 갑자기 마이크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수업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세컨드라이프에서 계정을 만들고,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아바타를 꾸미고,지도에서 코리아타운과 강의실을 찾아가는 것도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초보자는 이것에 익숙해지는 데만 2~3주가 걸리기도 한다.

가상세계와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