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盛日 <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

며칠 전 카자흐스탄에 다녀왔다.

대학 간의 교류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현장을 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2000년 이래 매년 10% 가깝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나오는 화학원소가 거의 다 있는 자원의 보고(寶庫),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 등이 이 나라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데 차선을 잘 지키지 않는 게 우선 눈에 띄었다.

그러다 이 나라에서는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차와 오른쪽에 있는 차들이 뒤섞여 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차종 또한 금방 내려앉을 것 같은 구(舊) 소련제 승용차에서부터 최신식 미제 장갑차형 지프에 이르기까지 가히 세계 차량 전시장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차종들이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 나라의 다이내믹한 경제성장은 우선 차량 홍수로 감지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얼핏 무질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치안이 잘 유지되는 것으로 미루어 자유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기실 '카자흐'라는 말은 자유인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 카자흐스탄은 '자유인의 나라'라는 말이 된다.

카자흐인은 전통적으로 유목(遊牧)을 주업으로 했고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살았으니 그런 이름이 붙었으리라.자유인의 나라답게 문화는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다.

고려인을 포함한 130여개의 이민족이 화합을 이루며 살고 있다.

차를 가진 사람은 굳이 택시 허가가 없어도 자가용 영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자유롭게 말 타는 문화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신흥경제의 현장을 살펴보면 성장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 좋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자유로운 문화적 배경에다 대통령 나자르바예프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우리의 개발독재를 연상케 하는 장기집권이지만 나라경제를 개방형 시스템으로 바꾸고 성장에 필요한 기술과 자금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확대로 조달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에 선진기술과 자금이 결합돼 생산이 이뤄지고 인구 1500만명의 부족한 내수시장 대신 수출로 시장을 열어가니 고도성장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늘어나는 생산과 건설로 막대한 고용수요가 창출되어 사람들은 일자리 걱정이 없다.

건설현장의 인력은 인근 우즈베키스탄의 근로자들로 채워야 하는 형편이다.

카자흐스탄의 개방형 경제와 고도성장은 바로 옆 우즈베키스탄의 저성장,자주형 경제와 선명한 대비(對比)를 이룬다.

우즈베키스탄은 한때 중앙아시아의 맏형으로서 카자흐스탄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우위를 누렸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폐쇄적 자주(自主) 노선을 걷다가 경제를 망치게 되었다.

풍부한 석유자원 등 좋은 조건을 갖고 있으나 높은 관세에다 외국인이 투자를 하려고 하면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도 않은 지방으로 가라고 하니 자본과 기술이 모일 리가 없다.

그리하여 한때 카자흐스탄보다 훨씬 잘 살던 나라가 이젠 국민소득이 5분의 1밖에 안 되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카자흐스탄은 물론 멀리 한국까지 떠나고 있다.

잘못된 리더십과 시스템이 국민들을 흩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건 기업이건 되는 경제에는 사람이 모이고 자원이 모인다.

반면에 안 되는 경제에선 사람과 자원이 흩어진다.

되는 경제는 자유와 창의성을 보장해주고 오고감을 규제하지 않는 경제다.

안 되는 경제는 자주라는 허울 속에 사람과 물자를 가두고 흐름을 막는 경제다.

우리나라를 돌아보아도 명백하다.

'지역 균형발전'이니 '경제주권 확립'이니 '자주'니 하는 용어들이 경제를 옭아맨 지난 10년간 경제시스템은 퇴행했고 성장률은 하강하고 있지 않은가.

오고감을 막지 않는 곳으로 기(氣)가 모이고 막는 곳에서는 흩어지는 아이러니가 경제의 진실이다.

경제를 다시 되살리려면 개방과 수용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과 인력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자.여기에 우리의 전통적인 부지런함이 결합된다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은 틀림없이 되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