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로 끝나는 가격표ㆍ끼워팔기 등 '싸다'는 인식 심어 줘

[Cover Story] 고정관념을 이용한 마케팅의 숨은 트릭
인간의 고정관념이나 관성적 사고 경향성을 비즈니스에 적절하게 활용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꽤 많다.

대표적인 사례인 마케팅 분야에서는 그 방법도 점점 더 치밀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관성적 사고를 이용하는 사례

각종 상품의 가격을 보면 999원, 9900원 등 '9'로 끝나거나 '9' 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유난히 많다. 이를 단수가격(Odds Pricing)이라고 부른다.

단수가격을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9로 끝나는 가격은 10만원, 100만원 등에 비해 왠지 정확하고 공정한 가격같은 인상을 소비자들에게 준다.

끝자리 숫자까지 기재함으로써 거품이 없다든가, 원가를 정확하게 반영한 제품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999원의 가격표는 1000원에 비해 자릿수가 한 단위 적기 때문에 싸다는 느낌을 준다.

단수가격은 특히 소비자들이 쇼핑 전에 '10만원 또는 1만원을 넘는 물건은 사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원칙을 정한 경우 이 같은 심리적 저항을 극복하는데 효과적이다.

고가 제품에는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역단수 가격'이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옷값을 7만1000원 10만2000원으로 매겨놓는 경우다.

7만원, 10만원에 오히려 1000~2000원을 더 붙여놓는 식이다.

[Cover Story] 고정관념을 이용한 마케팅의 숨은 트릭
역단수 가격은 가격에 구애 받지 않는 명품 마니아들에게는 오히려 환영받는 데 '싸구려'가 아니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주는 효과가 있다.

기존 가격표를 X자로 지우고 더 싼 가격을 옆에 써 놓는 방식도 관성적 사고 경향을 이용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기존 가격이 정말 존재했던 가격인지 알 수도 없지만 막연히 정가보다 싸게 판다는 느낌 때문에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끼워팔기 역시 유사한 전략이다.

특정 생활용품을 사면 증정품도 함께 주는 경우가 많지만 증정품 가격이 미리부터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비자들은 그러나 왠지 공짜가 생긴다는 생각에 기꺼이 구매하게 된다.

'우수고객으로 선정됐다'며 특정 상품 패키지를 우수고객에 한해 싸게 판매한다는 식의 텔레마케팅도 비슷한 사례다.

우수고객으로 뽑혔다는 말로 고객의 기분을 좋게한 후 남과는 차별되는 서비스를 싼 값에 공급받는다는 우월감을 갖도록 유도해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내용의 전화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성적 사고의 다양한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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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적 사고를 이용한 마케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따라서 이를 모두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거의 모든 마케팅 전략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 사고의 이 같은 경향성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같은 마케팅 전략에 넘어가는 이유는 평소에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선험적 경험을 별로 의심하지 않고 무심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기법의 마케팅은 때에 따라서 고객에 대한 기만행위가 될 수 있으며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Cover Story] 고정관념을 이용한 마케팅의 숨은 트릭
얼마 전 무작위로 개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카드가 연체됐으니 확인하라'는 메시지를 듣게한 뒤 가짜 은행원과 연결시켜 주민등록 번호와 카드번호 등 개인정보를 빼내던 사기꾼들이 있었다.

'카드 연체'라는 말에 관성적으로 혹은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소비자들의 행동을 사기에 이용했던 것이다.

물론 이 경우는 명백한 사기죄에 해당한다.

고정관념이나 관성적 사고를 깨고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며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간주하는 것들을 뒤집어 생각할 때 의외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 등은 모두 당시로서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오던 것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관성적 사고를 깨뜨리는 것은 이처럼 인류 역사상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 새로운 학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예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정관념이나 경향적 사고 중 상당수는 오랜 시간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서 형성된 것이지만 이 중 일부는 인간의 합리적인 판단은 물론 때로는 문명과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셈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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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는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물리적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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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이나 관성적 사고 경향성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물리적 현상으로 재미난 것 중에 착시(optical illusion)가 있다.

착시는 사물의 크기 형태 빛깔 등 객관적인 성질과 눈으로 본 성질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를 테면 두 줄기 평행선에 사선을 첨가하면 평행선이 평행으로 보이지 않거나, 길이가 같은 두 선분 중에서 한쪽 선분은 양끝에 바깥쪽으로 향한 화살을 붙이고 다른 선분의 양끝은 안으로 향한 화살을 연결해놓으면 전자가 후자보다 길게 보이는 등과 같은 일련의 현상이다.

달리는 자동차 바퀴 살이나 돌아가는 팽이가 일정한 속도에서 반대로 도는 것처첨 보이는 것이나,세로무늬 옷을 입었을 때 훨씬 날씬하게 보이는 것도 착시의 일종이다.

착시에는 기하학적 착시, 원근(遠近)의 착시, 가현 운동(假現運動) 등이 있고 밝기나 빛깔의 대비에도 일종의 착시가 있다.

기하학적 착시는 위에서 든 예처럼 각종 도형이나 선 등이 실제 길이와 다르게 보이고 직선이 곡선으로 보이는 등 도형이 왜곡된 형태로 인식되는 경우를 말한다.

원근의 착시는 기차 길의 끝을 좁게 그리면 원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말한다.

가현운동은 실제로는 움직임이 없는 그림이지만 우리가 눈으로 볼 때는 움직이는 것처럼 인식되는 헝태의 착시다.

잔상을 이용한 대표적인 예는 영화다.

파르테논 신전은 착시 현상을 역이용해 지어졌다.

이 신전은 정면에서 보면 수평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운데 부분이 양 끝쪽보다 약간 솟아오르게 지어졌다.

이는 수평에 맞게 지을 경우 실제 보기에는 가운데 부분이 오목해 보이는 착시를 미리 감안한 것이다.

착시가 생기는 이유는 잔상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의 뇌는 그림(상)이 없어진 뒤에도 잠깐 동안 그 그림의 영상을 가지고 있게 되며 이렇게 남아 있는 영상과 실제 영상이 합해져서 어떤 때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때로는 실제와 다른 길이, 또는 각도로 사물이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