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을 날리는 방법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과학에서 배우는 논리의 구조 (4) 자동조절의 원리
풍선을 불었다가 놓으면 어떻게 될까? 어지럽게 날아다니다가 고꾸라진다.

이때 풍선이 그리는 궤적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풍선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풍선은 바람이 빠지면서 추진력을 얻는다.

문제는 바람이 빠지면서 동시에 풍선의 모양이 바뀐다는 것이다.

풍선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모양이 일그러지기 때문에 뒤틀린다.

이 궤적을 현대 과학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런데 아주 간단한 조작만으로 이 풍선을 원하는 목표지점까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착륙하도록 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일까? 신문지를 삼각형으로 접어 그 안에 빵빵한 풍선을 넣고 날리면 된다.

신문지가 날개 역할을 해 풍선은 혼자 날아다닐 때와는 달리 안정적인 궤도를 그린다.

풍선의 비행 궤적을 통제하기 위해서 풍선이 날아가는 환경의 모든 요소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없다.

좌우 날개는 풍선의 요동을 막아 주고 균형을 잡아 준다.

그때그때마다 양 날개의 균형을 조금씩 틀어주는 지능까지 있다면 궤도는 더욱 안정적이 될 것이다.

이것이 크루즈미사일(순항미사일)의 원리다.

◆크루즈미사일이 비싼 이유

지능이 없는 곡사포의 포탄은 포신에서 떠난 순간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다.

포탄을 쏘기 전에 목표물과의 거리,장애물까지 바람의 방향을 계산하고 포탄의 무게와 추진력을 고려한 포물선을 계산해야 한다.

미처 계산해 넣지 못한 작은 환경의 변화도 비행 중인 포탄의 궤적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목표물에 정확하게 명중하는 일은 대단한 행운(?)이다.

그러나 '지능폭탄'(intelligent bomb)이라 불리는 순항미사일에는 작은 양 날개와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다.

발사할 때는 목표지점을 향해 대강(?) 날린다.

포탄 내부의 컴퓨터는 목표물과 포탄과의 거리와 방향을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날개는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에 기류의 변화는 포탄의 궤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수백km 밖에서 발사한 크루즈미사일은 오차범위 수m 내에서 정확하게 목표물에 명중한다.

크루즈미사일이나 신문지로 감싼 풍선의 비밀은 두 날개다.

발사대를 떠난 포탄이 맞닿게 되는 환경은 너무 복잡하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발사하기 전에 모두 고려할 수 없다.

이 문제를 두 날개는 간단하게 해결한다.

기류의 영향이 무엇이건 날개는 포탄의 균형을 회복시킬 수 있다.

◆자연의 지능

자연이 균형을 회복하는 방법은 크루즈미사일의 두 날개와 닮았다.

자연은 곡사포의 포탄처럼 미래나 환경을 예측한 다음에 계획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복잡한 환경을 계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획능력은 인간 두뇌만의 특권이다.

비교적 단순한 방법에 의지한다.

파도를 타는 서퍼의 무의식적인 몸놀림과 흡사하다.

왼쪽으로 기울면 몸의 중심을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오른쪽으로 기울면 왼쪽으로 이동한다.

혈액 속에 포도당이 많으면 인슐린을 분비해서 포도당을 분해한다.

반대로 포도당의 농도가 정상 이하로 떨어지면 포도당을 변형해 저장했던 글리코겐을 다시 포도당으로 바꿔 몸에 공급한다.

(고등학교 생물1)

◆증상과 치료

학생들은 사회문제를 고민할 때 문제를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문제 삼는 것은 대체로 문제 해결의 한 과정일 수도 있다.

갖가지 도시문제가 도시집중을 해결하는 한 방법인 것과 마찬가지다(생글생글 95호 여러가지 균형(하) 참조).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그 흔한 해열제조차 처방해 주지 않는 의사도 있다.

환자가 호소하는 고열(高熱)은 병의 증상인 동시에 치료의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열을 잡겠다고 섣불리 약을 쓰면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대식세포(바이러스를 잡아먹는 세포)의 활동만 억제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체온이 올라가지 않거나 포도당이 많아도 인슐린을 분비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다.

◆가격 폭등이 하는 일

포도당과 인슐린의 상호작용을 설명해준 다음 오일쇼크에 대한 각 국가의 대응을 찾아 비평하는 것이 문제였다.

학생은 석유가격의 폭등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하나일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아래 글을 읽고 석유 가격의 폭등이 해결해주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도록 하자.


▶학생 글:김수경 한광여고 2학년

오일쇼크가 일어났을 때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선택의 기로에 빠졌다.

(…) 갑작스런 물가 인상은 국가 경제에 큰 혼란을 줄 것이기에,언뜻 생각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기름값을 규제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만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방 선진국들은 석유 가격의 인상을 허용했다.

시장에 모든 역할을 일임한 것이다.

(…)

갑작스런 석유 값의 인상에 국민들은 탄력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즉각 에너지 절약에 나섰다.

차를 덜 타고,전기를 끄기 시작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에서 오일샌드나 천연가스처럼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산업구조 역시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변화해갔다.

시장에 역할을 맡긴 국가들은 비록 처음에는 물가가 크게 오르고 경제성장률 역시 하락하는 등 휘청거렸지만,결국에는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었다.

(…) 몇몇 나라들의 정부는 갑작스런 물가 상승을 우려해서 기름값을 잡았다.

(…) 그 결과로 석유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이 줄서기 비용을 대야만 했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석유 값이 50달러로 올랐을 것이라 가정하자.정부는 가격을 평소와 다름없는 30달러 선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으므로,석유는 가격이 아닌 '줄서기'로 배분되기 시작했다.

결국 매점매석과 암거래가 성행하게 되어 석유 값은 더욱 비싸지게 되었다.

만약 석유 값을 오르도록 놔뒀더라면 석유는 가격에 의해 공정하게 배분되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50달러에 석유를 샀을 것이고,그 돈을 지불할 용의가 없는 사람들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정부에서 석유 값을 싸게 하려고 노력한 결과가 국민들에게 오히려 더 큰 돈을 지불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손실은 바로 이 나라들에서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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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과학에서 배우는 논리의 구조 (4) 자동조절의 원리

[TIP] 치히로처럼 철길을 되짚어 오르라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돼지로 변한 부모를 구하기 위해 치히로는 물에 잠긴 철길 위를 되짚어 오른다.

'은하철도 999'나 '철도원'처럼 일본은 철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유난히 많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린시절을 보냈을 때는 이미 일본이 '철도의 왕국'이 된 이후다.

폐쇄된 철길을 따라 온종일 걸었던 유년의 추억이 치히로의 뒷모습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철길을 따라 오르던 개구쟁이들은 결국 무엇과 만나게 될까? 아마 어느 땐가 번성했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화석 같은 도시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철길은 미래의 감독에게는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마법의 통로였을 것이다.

현재의 문명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완성된 형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전 것은 모두 무효이고 오늘부터 이것이다'라는 형태로 말이다.

물에 잠긴 철길이라도 분명히 어딘가로 이어져 있듯이 하찮고 낡은 문명의 한 조각에도 사람들의 호흡이 숨어 있다.

버려진 철길로 이어진 도시가 한때는 사람들로 붐볐을 거리를 품고 있었듯이 문명의 화석 한 조각에서 인류의 풍성한 지혜를 만나게 될른지 모른다.

논술을 잘하려면 버려진 철길을 되짚어 오를 줄 알아야 한다.

번성했던 거리와 그 철길을 놓은 사람들의 고심까지도 상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철도 노선표 하나를 외우고 철도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