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남촌'은 없다

[돋보기 졸보기] 14. '너머'와 '넘어'의 구별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아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어느 것 한가진들 실어 안 오리/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파인(巴人) 김동환의 시 '산 너머 남촌에는'에 곡을 붙여 가수 박재란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다.

이 노랫말에 나오는 '산 너머'는 자칫 '산 넘어'로 적기 쉽다.

그런가 하면 '고생이 갈수록 점점 심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산 넘어 산'이란 표현을 쓴다.

이때는 '산 넘어'라고 해야 하나 '산 너머'로 해야 할까.

헷갈리기는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해 두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우선 '넘어'는 동사 '넘다'가 부사어로 쓰인 꼴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산을 넘어 간다'처럼 동작 개념을 담은 것이다.

이에 비해 '너머'는 전성명사로서 장소(공간) 개념이다.

이렇게 보면 그 쓰임새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넘어'는 동적인 의미를 갖는 데에 쓰이고 '너머'는 정태(靜態)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을 넘어서 계속되는 난관'을 뜻하는 말인 '산 넘어 산'은 '너머'를 쓰면 틀린다.

'너머'는 장소를 뜻하므로 '산 너머(에 있는) 마을','창문 너머(로) 아지랑이가…'처럼 쓰인다.

괄호 속에 있는 말이 생략될 수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처격(處格) 조사가 붙을 수 있다.

그러나 동사로 쓰인 '넘어'에는 조사가 붙지 못한다.

'산 너머 남촌에는…' 할 때도 '산을 넘는' 행위를 뜻하는 게 아니고 '산의 저쪽 공간'에 있는 남촌을 말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너머'를 써야 맞는다.

이런 기준이 세워졌다면 이제 '어깨너머(어깨넘어) 배우다'란 말을 바로 적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이 하는 것을 옆에서 보거나 들어 배움'을 뜻하는 이 표현에선 '옆'이 핵심어인데,이는 동작이 아니라 공간의 개념이다.

따라서 이 말은 '어깨너머'가 맞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