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창조적 경영'이란 새 경영화두를 던졌다.

미국 내 친한파 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수여하는 '밴플리트상' 수상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 회장은 1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타임워너센터에서 전자계열사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창조적 경영으로 세계 일류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적 경영'은 삼성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삼성만의 고유한 가치를 담은 제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 이미 국내외 시장에서 선두기업의 위치에 오른 삼성이 더 이상 모범으로 삼을 '벤치마킹' 대상이 없고 뒤따르는 추격자들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10년간 제2도약을 주도할 경영화두인 셈이다. 이 회장은 앞서 지난 6월 국내에서 가진 13개 독립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도 "과거에 해온 대로 하거나 남의 것만 카피해서는 절대로 독자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 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창조적 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뉴욕 회의에서 이 회장은 전자계열사 사장단에게 "뉴욕은 선진 디지털제품의 각축장으로 세계 최고 제품의 현 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라며 "최고급 소비자로부터 인정받아야 진정한 세계 최고 제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독자기술로 통신 종주국인 미국 본토에 진출한 '와이브로'와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개발을 가능케 한 CTF(Charge Trap Flash)기술,세계 TV시장을 휩쓴 보르도 TV 등을 독창적인 '창조경영'의 산물"로 꼽았다. 또 창조적 경영을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우수인력 채용과 육성,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류 인재를 확보한 선진기업을 앞서기 위해서는 '글로벌'한 디자인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초일류 인재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삼성 안팎에서는 그동안 이 회장이 해외경영전략회의를 통해 그룹 경영의 큰 전환점을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미국 선언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이 회장은 '디자인 경영'(2005년 4월 밀라노 회의),'제2의 삼성 건설'(2005년 7월 베트남 회의),'민감대응체제 구축'(2006년 3월 국내 전자계열 사장단 회의) 등의 새 화두를 던지며 삼성의 변화를 주도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7월 베트남 해외경영전략회의 이후 14개월 만에 열린 해외 전략회의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당장 이번 회의에 참석한 삼성전략기획실 이학수 부회장,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이기태 정보통신총괄 사장,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 등 전자 최고경영자(CEO)들은 창조적 인재 확보와 경영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 회장은 20일(현지시간) '밴플리트 상' 시상식에 참석한 뒤 북미지역의 주요 사업장을 둘러보고 미국의 주요 IT기업 총수들과 면담도 가질 예정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