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님은 어딜 갔나.' 앞은 가곡 '봉선화',뒤는 가요 '봉숭아'(정태춘·채은옥)다.

봉숭아는 이렇게 세월에 관계없이 우리 곁에 있는 정겨운 꽃이다.

정식 명칭은 봉선화(鳳仙花).쌍떡잎식물의 한해살이풀이고 생명력이 강해 어디서든 잘 자란다.

4~5월에 씨를 뿌리면 6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줄곧 꽃이 핀다.

색깔은 빨강 분홍 주홍 자주 흰색 등이고,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귀신이나 나쁜 기운을 쫓는다고 여겨 울 밑이나 장독대 근처에 많이 심었고,흰꽃 열매는 약으로도 썼다.

무엇보다 길고 지루하던 장마가 끝나 아침 저녁 매미 울음소리 요란하고 햇살 마냥 따가운 이즈음이면 꽃잎으로 손톱을 물들였다.

붉은 꽃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뤄지거나 다음해에 연인이 생긴다는 얘기를 믿으면서.

봉숭아 꽃잎을 따서 곱게 찧고 백반을 섞어 손톱에 고루 잘 편 다음 이파리나 천으로 감싸고 움직이지 않도록 실로 동여매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손톱 아래까지 발갛게 물들곤 했다.

똑같은 꽃으로 해도 어느 손톱은 좀 더 붉고 선명하고 어느 것은 연하고 다소 얼룩덜룩해졌지만 그래도 예뻤다.

그 아름다움을 조선조 시인 허난설헌은 이렇게 그렸다.

'빨간 꽃잎사귀 찧어내어 쪽잎에 말아/등불 앞에서 곱게 돌돌 묶었다가/새벽에 일어나 발을 걷어올리면/거울에 비치는 밝은 빛을 보노라/풀잎을 주울 때면 붉은 범나비 날 듯/거문고 탈 때는 놀란 복사꽃잎 떨어지네.'(김지용 역)

봉숭아물의 은은함은 매니큐어와 비교할 수 없다.

이 여름,약지와 새끼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며 사라져가는 것들의 은근함에 빠져보는 건 어떨는지.수술중 발생할 수 있는 저산소증을 파악하려면 손·발톱이 파랗게 변하는지(청색증) 봐야 한다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임산부 등은 피하도록 하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