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俊模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1998년 4월 일본에서는 60세 미만의 정년제가 법적으로 금지돼오다가 올 4월부터 개정된 고연령자고용안정법에 의해 고령자(高齡者)의 고용연령이 2006년 62세,2013년 65세로 단계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 법은 단순히 정년연장을 법으로 강제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기업 인사관리의 숨통을 틔워주면서 점진적인 개선을 유도해 간다는 지혜로움을 담고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의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65세로의 정년연장,정년폐지,퇴직후 재고용의 세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가운데 90%가 넘는 비율의 사용자가 퇴직후 재고용 방안을 택하고 있다.

퇴직 후 재고용은 노사가 합의해 재고용자 선정기준을 마련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노사합의를 못 이룬 기업은 2010년까지 사용자 판단에 따라 선별할 수 있게(대기업의 경우 2008년까지) 유예(猶豫) 기간을 두었다.

우리 정부도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대응해 현행 55세 수준인 기업 근로자의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를 살펴보면 우선 2011년까지 60세로 정년연장 의무조항을 신설하고 장기적으로 연금 수급 개시연령인 65세와 일치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정년연장을 강행 규정화하는 정책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 요지는 첫째로 정년연장의 실제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미국의 연령차별금지제도(ADEA)를 들 수 있는데 미국에서 대부분의 정년제가 불법으로 간주되지만 정년 시점에서 임금을 급감시키거나 연금수급액을 극대화시켜 정년시점에서 자발적인 퇴직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년연장시 기업들이 임금스케줄을 조정함으로써 정년을 실질적으로 규정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로 정년연장효과가 노동시장의 불공평성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정년에 의해 퇴직하는 비율은 매우 낮으며 정년연령의 연장은 공공부문,노조가 조직된 대규모 사업장 등 일부 계층에만 그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에 기초한다.

셋째로 전반적인 노동시장 경직화에 대한 우려다.

우리나라에서 노동법과 단체협약 등으로 인해 해고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인 가운데 정년을 연장한다면 고용보호가 강화돼 노동시장의 경직성(硬直性)이 커져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정책사례는 정부가 60세까지의 정년연장 강행규정을 일거에 법제화하기 보다는 정년연장의 단계별 접근방식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일본의 사례를 한국의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실정에 맞춰 다음과 같이 단계별 정책 플랜을 설정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55~60세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노사가 합의하거나 사용자가 정한 기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우수한 고령근로자들을 재고용하는 재고용 옵션제(혹은 임금조정옵션제)를 확산해 가는 것이다.

고령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재직시보다는 낮은 임금이기는 하지만 고령자 생활에 도움이 되고 국가차원에서는 고령자 인적자원을 활용해 사회보장비용을 절약한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가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임금피크제를 확산해 가는 것이다.

향후 5년내에 노사관계가 협력적인 분위기로 개선되고 노동법 개선이 이뤄진다면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토양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해 본다.

이러한 두 단계를 거치면서 60세까지의 고용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된다는 전제하에 60세 정년강행규정 입법이 최종단계에서 검토될 수 있다.

1998년 일본의 60세 정년강행규정도 정부의 사전 노력으로 도입시점에서 85% 이상의 일본기업들의 정년이 60세여서 강행규정이 인사관리 담당자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았음을 인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