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 중국이나 일본이 한국을 따돌리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마도 우리 정부는 엄청난 곤경에 처해 있을 겁니다."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외교통상부 청사 8층 집무실에서 만난 김종훈 한·미 FTA 한국측 수석대표는 "왜 하필 미국과 협상을 하느냐"는 첫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FTA 1차 협상 준비에 하루를 초단위로 쪼개 쓴다는 그의 답변엔 거침이 없었다.

"미국과의 FTA 타결은 동북아시아에서 무역의 헤게모니를 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북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미국처럼 해외 시장 진출 노하우가 많은 나라와 FTA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동북아의 통상허브가 된다는 뜻이지요.

다른 나라에 그런 지위를 넘겨줄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김 대표의 말대로 미국과의 FTA 협상 개시가 발표되면서 벌써부터 다른 나라와의 교섭이 유리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의 FTA 협상은 EU측이 먼저 제의해 다음 달 예비논의가 시작된다.

최근 방한했던 보시라이 중국 상무부장도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한·중 FTA 추진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3년 전 우리가 EU의 문을 두드렸을 때는 '당분간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 전념하겠다'는 소극적 대답만을 들었다"며 웃었다.

그는 "중국의 반응은 우리가 미국과 FTA를 한다는 데 대한 정치·경제적 대응"이라고 해석했다.


김 대표는 1974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됐다.

"당시 퍼블릭카라는 차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티코나 마티스 정도의 차였지요.

대학을 졸업할 때 나는 언제쯤 저런 차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나라나 가정 형편상 평생을 가도 저런 차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제가 13번째 차를 타고 있으니…." 그가 자유무역주의자가 된 이유다.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니까 '좌깜빡이를 넣고 우회전하는 격'이란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부에선 음모론까지 들리는데요.


"한·미 FTA의 성격과 현 정부의 색깔 때문에 혼란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미 FTA는 단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념적으로 몰고 가면 본질을 변색시키는 우(愚)를 범할 수 있지요.

우리가 지난 30년간 가파른 성장을 해왔지만 지금은 선진국과의 격차가 줄지 않고 중국은 맹추격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먹고 살 방도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반대하는 쪽에선 'FTA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미국의 협상 초안을 받아봤지만 서프라이즈(surprise)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대부분이 이미 정부조직에서 다루던 사안이에요.

과거 어떤 FTA협상이나 통상협상을 앞두고 이 정도의 강도로 의견수렴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업계 의견도 192건이나 들어왔습니다."


-협상분과 17개 가운데 어느 분야가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하는지요.

"농산물 자동차 의약품 등 각종 상품에 대해 양허안을 만들어야 하는 상품분과가 가장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 다음은 서비스·투자분과겠지요.

서비스는 금융서비스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대표적으로 유보해야 할 것이 기초교육 의료보험 등 공공서비스입니다.

통신 전력 등에 대한 외국인 투자지분 제한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제가 1990년대 중반 양담배 개방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전매사업이 다 망한다고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 수입담배 점유율은 20%에 불과하지요.

캠코더 밥솥 할인점 등 이런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협상 대상이 미국이라고 해서 방어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웬디 커틀러 미국측 대표가 '한국의 비관세 장벽 철폐가 목표'라고 했다는데 미국도 비관세 장벽이 많지 않습니까.

연방제이다 보니 50개주가 저마다 독특한 규제를 갖고 있지요.

통관 절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통관시 안전기준에 대한 검증문제 등 수속이 더 까다롭지 않습니까."


-농산물 분야가 가장 큰 약점인데요.

"2004년에 미국으로부터 27억달러어치의 농산물이 수입됐습니다.

같은 해 우리가 수출한 섬유직물이 21억달러 규모입니다.

섬유직물은 미국측이 높은 관세로 보호하고 있는 산업이지요.

미국이 농산물을 요구하는 이상으로 섬유직물쪽 협상을 공세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농업 개방은 다른 나라로부터의 수입을 대체하는 방식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중국 브라질 호주 등으로부터 수입되는 농산물을 대체하는 효과가 날 수 있는 품목을 주로 개방하겠다는 것이지요.

밀 옥수수 콩 등과 쇠고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어떤 품목 간 경쟁구도가 있는지,수입 대체 효과를 볼 수 있는 품목은 무엇인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요.

"미국의 반덤핑제도에 제소당하는 일이 확실히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업이 반덤핑 판정을 받으면 수출 의욕을 잃게 됩니다.

미국이 반덤핑을 사용하는 방법이 공정했는가,남용은 없었는가를 꼼꼼히 따져 반덤핑이 오·남용될 수 있는 소지를 줄이겠습니다.

개성공단 문제도 중요하게 다룬다는 생각이지요.

다른 나라와 FTA를 할 때도 모두 반영된 사안입니다.

다만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경제논리보다 미·북관계를 고려하고 있는 듯합니다."


-맞상대인 미국 협상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미국 사람들이 굉장히 디테일(detail)한 것을 요구할 때가 있는데 그건 미 업계의 자료를 그대로 낸 것이 많습니다.

우리 업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일상적 영업행위 외에 영업에서의 애로점을 관리해서 정부에 제출해준다면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한 예로 한국인이 미국에서 사업할 때 가장 큰 문제가 체제의 불편이지 않습니까.

비자 갱신을 위해 왔다갔다 해야 하고 가족에게 운전면허가 잘 나오질 않지요.

미국 사회보장번호가 없어 은행계좌를 만들기도 어렵고…. 일상생활에 불편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도 이번에 다 풀어내겠습니다."


-요즘 무엇이 가장 힘든 일인지요.

"지금은 협상전략을 짜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할 때입니다.

아무래도 반대하는 분들에 대해 정부측 입장을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모자라 힘들 때가 많습니다.

보통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오후 11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갑니다.

내 인생에서 군대 훈련받을 때 빼놓곤 가장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원정 시위대가 워싱턴에 간다는데요.

"가서 평화적 시위를 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만 정부가 걱정하는 것은 한 번 일어났던 일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말 홍콩에서처럼 비평화적 장면이 연출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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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 대표 약력 ]

△1952년 대구 출생

△1975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74년 외교부 입부(외무고시 8회)

△1993∼1996년 주미 경제참사관

△2000~2002년 지역통상국 국장

△2002~2004년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2004년 APEC 고위관리회의 의장

△2006년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