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기부 'X파일' 사건이나 '삼성공화국론(論)' 등으로 시련을 겪다 8천억원의 사회헌납 등 천신만고 끝에 정상을 회복해가던 삼성그룹이 현대.기아차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로비의혹 사건으로 또다시 '덤터기'를 쓰게 되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정몽구 회장 부자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발표한 대규모 사회공헌 계획으로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되고 앞서 발표된 삼성의 '2.7 대책'까지 함께 "돈으로 비리를 덮으려는 행태"라는 비난의 표적이 되자 일사천리로 진행돼온 삼성의 후속대책에도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삼성 관계자는 23일 "현대차 사태에 관계없이 우리는 당초 예정한대로 '2.7 대책'의 후속조치들을 차근차근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현대차그룹과는 여러가지로 사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까지 한데 엮어 비난하는 일부 여론에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8천억원 사회헌납을 등을 포함한 '2.7대책'을 발표하고 구조조정본부 축소개편, 법률봉사단 출범, 전국 103개 사회봉사센터 개소 등 후속 조치를 착실히 실행해온 삼성이 지난주 중 또다른 후속대책인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 발족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해 왔다.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도 지난 13일 삼성자원봉사센터 발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지모' 구성이 거의 완료돼 발표가 임박했음을 밝히면서 이 모임에 참가할 멤버까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시사한 바 있다.

삼성은 "한두명의 멤버가 막판까지 확정되지 않고 있을 뿐 '삼지모' 구성 발표시기와 현대차 사태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으나 재계에서는 여론의 추이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삼성으로서는 현대차사태가 악화되고 재벌그룹의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한 전반적 여론이 나빠질 경우 예정된 후속조치들의 발표를 미룰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삼성은 '삼지모' 결성 이외에도 다음달 청와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를 전후해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역시 빠르면 다음달중 의료봉사단 발족을 각각 발표하는 등 '민심 얻기' 작업에 한층 속도를 낼 예정이었다.

현대차 사태는 이처럼 삼성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거는 요인이 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정작 삼성측이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이로 인한 비난여론이 진행중인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의 '헐값배정' 의혹에 관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권 승계에 관한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 관계자는 "물의를 빚은 끝에 거액을 헌납하기에 이르렀다는 표면적인 양상만 같을 뿐 현대차와 삼성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른데 옥석을 가리지 않고 한데 묶어 비난하는 시각이 있다"면서 "사안의 성격상 속시원하게 해명하고 나서기도 어려워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