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 서강대 교수·경제학 >


한국 정부의 대북 경제정책 기조는 작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독일 방문에서 한 말에 잘 함축돼 있다.

"지원은 독일식으로,통일은 비독일식으로" 하는 게 그것이다.

즉 독일식 흡수통일에는 반대하지만 독일식 대폭 지원은 견지한다는 것이다.

먼저 원조와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경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북한 경제를 회생·발전시킨 다음 연방제 단계를 거쳐 한 국가로 통일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 포괄적·구체적 대북경협방안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핵 동결 및 폐기를 전제로 여러 산업 부문에 걸쳐 신규사업을 벌이고 항만,에너지,철도,관광에 걸쳐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전략사업을 시행한다는 방안이 그 골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국가들의 제도나 정책이 성장친화적으로 바뀌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의 자생력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성공한 원조의 대표적 경우라고 언급되는 마셜 플랜도 독일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제도의 토대 위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반면 인도적 지원 이외의 목적으로 독재나 사회주의 국가에 퍼부었던 돈은 다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한국전쟁 이후 수년 동안 지속됐던 소련의 막대한 북한 원조의 흔적은 지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또 하나의 경험적 사실은 제왕적 권력을 쥐고 있는 기존의 독재자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경험적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첫째,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 없이 원조나 경협만으로 북한 경제를 자생적 성장의 궤도에 올려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체제 전환에 성공한 것은 새로이 정권을 잡은 등소평의 결단 때문이지 외부의 원조나 압박 때문이 아니었다.

둘째, 한국의 원조나 경협을 얻기 위해 북한이 체제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북한 정권은 체제변화보다는 제한된 개방과 정치적 제스처로 한국의 지원을 유도하거나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체제를 연명하려 할 것이다.

북한을 둘러싼 현재 상황은 정부의 대북경협방안을 시도조차 해볼 수 없을 정도로 암담하다.

포괄적 대북 지원의 전제조건인 핵 폐기 움직임은커녕 이를 논의하기 위한 6자회담마저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 상황에서 정부는 북한 문제를 단기간에 풀어보려고 조바심을 내서는 안된다.

오히려 사실에 기초한 장기적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그 전략 구상의 원칙은 다음과 같이 세워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탈(脫)정치화다.

지금 북한 문제는 너무 정치화돼 있다.

여와 야,좌와 우로 나뉘어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전략의 큰 그림을 짜고 집행하는 주체를 정치권과 관료들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정치 중립적이고 경제와 사회주의 체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에게 법적인 독립성을 보장해주고 대북 경제정책의 설계와 집행을 맡겨야 한다.

둘째는 북한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것까지 대비한 시나리오별 계획을 짜야 한다.

현 정부가 내놓은 대북경협방안은 가장 좋은 전개 과정을 가정한 희망사항의 열거로 보인다.

우연의 연속으로 그 상황이 전개될 확률은 10% 미만으로 판단된다.

그런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전략에 목을 매놓고 있을 수는 없다.

북한 문제는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다.

현 정부에 필요한 것은 이념보다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중시하는 것과 몽롱한 희망보다는 냉철한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원도 독일식으로,통일 비용도 독일식으로" 치르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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