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의 한 공사장.수십명의 중남미 출신 노동자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하루종일 묵묵히 일한다.

이들의 시간당 임금은 미국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공사를 맡고 있는 건설회사 사장 빌 트리머는 "월급을 두 배로 올려준다고 미국인들이 이 험한 곳에서 일을 하겠느냐"고 의문을 표시한다.

그는 "월급을 올려준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이곳 일은 정말 고되다"고 말했다.

#2
전 세계 주요 언론사의 워싱턴 지국이 몰려 있는 내셔널 프레스 빌딩. 퇴근시간이 돼 입주자들이 사무실을 떠나면 건물 각 층은 남미 출신 잡역부들의 일터로 바뀐다.

'진공청소(Vacuum)'라는 한 마디 영어만 쓸 수 있는 20대 후반 남미계 젊은이가 사무실 청소를 하고 나가면 잠시 후 역시 영어를 전혀 못 하는 2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와 쓰레기통을 비운다.


○불법 체류자 빠지면 미국 경제도 휘청

[불법이민 미국경제에 약인가, 독인가] 불법 체류자 빠지면 미국 경제도 휘청
저임금의 중남미 노동자는 이처럼 미국 경제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다.

이들은 미국 시민권자나 합법적인 신분의 외국인들이 꺼리는 험한 일을 도맡고 있다.

퓨 히스패닉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워싱턴 지역 310만명의 노동력 중 30만명이 불법 체류자다.

이들은 이 지역 빌딩 청소일의 51%,건설업의 31%,식품점 및 식당 종업원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 이들은 물론 업주들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샌디에이고에서 건설업을 하는 셔먼 하머씨는 "값싼 임금의 불법 체류자 덕분에 겨우 겨우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이들이 빠져 나가면 일손이 달려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역효과를 불러올 게 뻔하다"고 주장했다.

세계적 금융회사인 JP모건의 안토니 첸 수석연구원도 저임금 불법체류자는 미국에 피해는커녕 이익을 준다고 강조한다.

첸은 "저임금 불법체류자를 쫓아낸다고 미국인들이 그 같은 낮은 보수를 받고 일하지 않을 게 확실하다"며 "미국인은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고 기업으로서는 뜻하지 않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해외 이전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위층 피해,정체성 혼란 주장도

그러나 불법 이민 규제 강화에 찬성하는 쪽은 늘어나는 불법 체류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미국인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민연구센터 스티븐 카마로타 수석연구원은 "지난 5년간 18~64세 인구 중 미국 국적자는 61% 증가했지만 일자리는 고작 9%밖에 늘지 않았다"며 "특히 저학력 미국인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5년간 고졸 이상 미국인 취업률은 78%에서 75%로,고졸 미만은 59%에서 56%로 떨어졌다"며 "저임금 미국인 10명 중 1명은 이 기간에 일자리를 잃었고 높은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40여개 직종 1700만명의 미국인들은 불법 체류자들과 피 말리는 일자리 경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체류 노동자의 미국 내 역할이 과장됐다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 이민국 등의 연구 결과를 인용,택시운전사의 59%,주차장 직원의 66%,농수산 노동자의 76%,청소부의 83%,건설노동자의 86%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고 보도했다.

불법 이민자가 없어도 이들 부문이 입게 되는 타격은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보수층이 불법 이민을 문제 삼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히스패닉,즉 중남미 인구의 거대한 유입으로 미국 사회가 2개의 언어(영어와 스페인어)와 2개의 사회로 나눠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인 앵글로 색슨 출신의 개신교 신자가 주류였던 미국 사회가 히스패닉 인구의 급증으로 큰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안보,교육,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부담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흑인 문제로 100년여의 진통을 치른 미국이 이번에는 히스패닉 등 이민 문제로 또 하나의 세기적 진통을 겪고 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