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8일 구조조정본부 축소 개편과 명칭 변경을 밝힘에 따라 '구조조정본부'는 1998년 4월 설립된 이후 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삼성 구조본은 그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제와 국내 최고 수준의 경영기법을 통해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킨 순기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는 '재벌 시스템의 최후 보루'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반(反)삼성 여론이 구조본에 집중되면서 삼성 내부에서도 구조본 조직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조본 축소 개편의 의미 삼성의 이날 구조본 축소 개편 발표는 무엇보다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지난해 'X파일' 사건과 헌법소원 등으로 촉발된 반삼성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구조본 조직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내부 결론에 따른 것이다. 실제 구조본은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과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에 강경 대처하면서 반삼성 세력의 주 공격대상이 됐었다. 이날 조직개편안은 이 같은 외부의 비난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외적인 법률 대응을 주도했던 법무실을 구조본에서 떼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법무실은 앞으로 법률대응보다는 사장단회의 산하에서 계열사 사장들의 의사결정에 대한 자문기구의 역할을 맡게 된다. 구조본의 역할도 그룹 인사 및 경영에 직접 관여하던 것에서 앞으로는 미래 경영전략 수립 등 '경영지원' 분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방향으로 바뀐다. '관제탑'이 아닌 '미래전략형 지원 조직'으로 개편하겠다는 게 삼성의 전략이다. ◆계열사 자율경영 본격화되나 구조본 축소 개편에 따라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향후 삼성그룹의 경영시스템이다. 지금까지 삼성의 경영시스템은 이건희 회장이 경영 관련 권한의 30%,구조본이 30%,나머지 계열사 사장단이 40%를 갖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번 구조본 축소 개편으로 이 같은 '3-3-4'의 황금분할 구조는 바뀔 수밖에 없게 됐다. 구조본이 인사와 예산 권한을 쥐고 계열사를 주도했던 종전과 달리 인력감축과 조직축소로 계열사에 대한 '통제'와 '관리'의 범위가 좁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조본의 장악력이 약화될 경우 앞으로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도 이날 발표를 통해 앞으로 구조본 주도의 경영시스템이 아닌 계열사별 자율경영과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략기획위원회 구성원 변화는 이 같은 계열사 책임경영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종전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이었던 삼성전자의 이윤우 부회장,최도석 사장,황창규 사장과 삼성생명 배정충 사장이 빠지는 대신 김순택 삼성SDI 사장과 이종왕 고문이 포함됐다. 이는 계열사 사장들이 불필요한 눈치를 보지 않고 재량껏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구조본이 계열사의 주요 의사 결정에 일일이 관여하고 피드백을 통해 사후 관리까지 도맡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