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우리 국가체제의 양대 축이다. 이 둘은 상호의존적이며 홀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이 두 개념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한 나라는 세계경제의 무대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각기 독립적인 주체가 돼 경쟁적으로 행동하는 곳이 시장이라면,모든 국민이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주인으로 행동하는 것이 민주주의체제이다. 민주주의는 각 구성원이 법과 규범을 준수하는 전제 아래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조화롭게 운영될 수 있다. 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합리적 행동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개인의 자유와 의사결정이 최상의 가치로 추구되는 체제이다. 그런데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는 괴리된 현상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떼지어 행동(herd behavior)'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무리를 이뤄 행동하면 한쪽으로 쏠리는 결과가 초래되기에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경제의 안정이 무너지고 불확실성이 증가하게 된다. 경제주체들의 이러한 행동은 1997년 말 아시아 각국 경제위기의 주요요인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으며,특히 우리나라에서 자주 관측되는 현상이다. 쉽게 끓고 쉽게 식어 냄비현상이라 불리는 경제의 과열과 급랭의 주요 요인임은 말할 나위 없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거품을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경제보다는 정치적 동기에서 유발되기도 하는데,이 경우 민주적 절차에 따른 개개인의 의견수렴과정을 의미 없게 만들기도 한다. 왜 떼지어 행동하게 되는가? 이는 특정 목적을 위한 집단행동,또는 유행 따라 너도나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누가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조종한 결과가 아니라는 게 특성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할 경우,개인의 입장에서 합리적 선택의 여지는 줄어들기에 오히려 떼지어 행동하는 게 단기적으론 합리적 행태일 수 있다. 예를 들어,거품상태에선 거품이 무너져버리는 순간까지는 가격이 오르고 이윤이 창출되기에 개인으로선 남들이 하는대로 시장에 남아 있게끔 되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거품이 사라져버릴 경우를 고려하면,사회 전체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따라서 개별 주체들의 행동을 나무라기 보다는 이러한 행동이 촉발되지 않도록 여건을 정비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선결요건인 것이다. 선진경제일수록 합리적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떼지어 행동하는 현상이 드물게 나타난다. 왜 그럴까? 첫째,경제활동이 투명하고,모든 경제주체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민간부문,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간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작다. 정부정책이 민간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경우 개인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도 독자적 행동을 취하기 어렵다. 둘째,경제문제의 정치화가 최소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문제 해결에는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결정이 필수적인데 정치적 결정은 감성에 좌우될 여지가 있다. 개인의 합리성이 전제가 되면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선택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셋째,경제제도의 유연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직적인 제도에서는 개인의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므로 상대적으로 남과 같이 행동하는 결과가 만연하게 된다. 부동산시장 안정,스크린 쿼터 축소,한ㆍ미FTA 협상 등 중요하고 민감한 정책과제들이 추진되고 있다. 제아무리 옳은 방향이라고 해도 정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떼지어 하는 행동이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경주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