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엔 드물지만 20대 후반만 해도 당사자는 물론 아버지의 형제순위까지 알 수 있는 이름이 있다. 후남 필남 지욱 등이 그렇다. 이런 이름을 가진 여성은 대개 둘째나 셋째딸이고 아버지가 큰아들일 가능성도 높다. 첫째 혹은 둘째까지 손녀를 본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동생을 보라는 뜻에서 붙여준 이름인 까닭이다. 이름은 이처럼 많은 걸 드러낸다. 태어난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나타내고,이름을 지은 부모나 조부모의 가치관과 종교를 보여주기도 한다. 60대 이상 여성에겐 일본식 이름의 잔재인 '자(子)',다음 세대엔 숙(淑) 희(姬) 순(順)이 흔한 것과 크리스찬 가정의 자녀 이름에 은혜 이룬 등이 많은 게 그런 예다. 이름은 항렬도 보여준다. 하지만 항렬에 따른 돌림자를 사용하게 되면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글자뿐이다. 그나마 친척 중 같은 이름이 없는지와 성명학에 따른 획수 등을 고려하면 고를 수 있는 폭은 극히 좁다. 결국 고심 끝에 읽기 힘든 독특한 한자를 찾거나 성과 합쳐졌을 때의 발음 등을 미처 살피지 못하고 정하는 일이 생긴다. 문제는 자기가 짓지 않은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우스갯거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셋째딸이란 뜻의 삼순이란 이름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소박하고 정겹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촌스럽다고 여기면 그야말로 콤플렉스의 굴레가 된다. 하물며 뜻이나 발음이 묘한 경우 당사자가 겪을 고통은 남이 짐작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회적 혼란 등을 이유로 개명(改名)을 엄격히 제한해 왔다. 마침내 대법원에서 이름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에 관련된 것이니 범죄 은폐 등의 불순한 의도가 없는 한 개명(改名)을 허가해야 마땅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랫동안 써온 이름을 바꾸려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제 법원이 분류한 개명 신청 사유는 14가지이지만 '창피하고 괴롭다'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름이란 이미지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인 만큼 본인이 싫으면 싫은 것이다. 뒤늦게라도 바꿀 수 있게 된 이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