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 영화평론가 > 한때 한국영화에서 오마주(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행위)라고 하면 으레 감독 자신이 보았던 위대한 영화, 영화 역사의 걸작들이란 인식이 흔했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면 동양화재 광고에선 '전함 포테킨'의 오뎃사 계단 장면이 삽입됐고, '지구를 지켜라'에선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한 장면이 나온다. 존경을 표한다는 것이 자신의 영화 인생에 시금석이 됐거나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임이 분명할 터.거기에 오슨 웰스니 스탠리 큐브릭 같은 거장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영화에선 그런 오마주를 바치는 영화,혹은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한 토막이 한국 영화나 노래,그것도 시대를 관통했던 가장 통속적인 것들이라 흥미롭다. 예를 들면 최근 개봉된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에서 낮에는 티켓 끊고 밤에는 단란주점을 뛰던 여주인공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삼류 가수가 그랬듯이 술집 구석에 앉아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른다. 뜨내기 손님이 휘두른 맥주병에 얻어맞아 피멍든 얼굴을 하고서도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해달라며 눈물을 글썽인다. 모처럼 둘이 트럭을 타고 야외 극장에 가서 영화구경을 하던 밤,영화는 당대의 감성 멜로인 '봄날은 간다'를 영화 속 영화로 차용하면서 방향은 다르지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어쩌면 '봄날은 간다'가 잊혀지지 않는 사랑 얘기라면 '너는 내 운명'은 죽지 않는 사랑 얘기일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80년대 짧았던 서울의 봄을 배경으로 성장통을 앓으며 커나가는 '사랑해 말순씨'의 14살짜리 주인공 광호는 친구들과 몰래 극장 구경을 간다. 어두컴컴한 스크린 한 구석에는 놀랍게도 정윤희 주연의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가 삽입돼 있다. 당대의 남학생들을 가장 들뜨게 했던 여배우.화면에서라도 정윤희씨의 젊은 날의 모습을 보는 감회는 새롭다. 한국영화가 한국영화에 존경이나 애정을 바친다는 것은 분명 2005년 들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영화를 일반적인 문화 담론의 자장안에 끌어들인 연대가 90년대 중반부터인데 그 속편격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2000년 독일에서 10년간 유학하고 돌아온 선배는 가장 놀랐던 것이 대학생들이 한국 영화를 방화라고 부르지도 않고, 한국 영화에 대해 스스럼없이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라 했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이제는 두터워진 한국 영화의 토양 위에서 한국 영화가 제 자신의 역사에 존경과 어떤 긍정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한 감독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판단을 떠나 어쩌면 한국 사회가 자신이 걸어온 80년대 역사 속의 사람들 그 자체를 긍정하는 어떤 몸짓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통속성이라고 불리는 것들. 흔히 '한국적' 이라고 이야기할 때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고 남는 잉여물로 방치된 문화적 현상들이 이제야 한 시대를 대표했던 문화 현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반갑고 소중하다. 그것은 이제 우리 문화계 안에서도 80년대를 통과하면서 암암리에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대중문화에 대한 회고와 재해석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징후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영화는 '그때 그 사람들'이나 '효자동 이발사''슈퍼 스타 감사용'처럼 80년대 역사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 조명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시작하고 있다. 또한 올해엔 처음으로 군대 문화를 정면으로 다룬 '용서받지 못한 자'가 부산영화제에서 선을 보였다. 이에 발맞춰 우리가 '통속성'이라는 범주에 집어 넣었던 일련의 대중문화 현상들이 어떻게 이 땅의 민초들과 함께 살아남았는지, 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해석과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