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는 명품을 고집하지만 양복 셔츠 등은 기성복을 산다.


점심은 편의점에서 해결해도 와인을 살 때는 까다롭게 고른다.


기존 상식을 뒤집는 소비패턴이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트로 굳어지고 있다.


불황으로 씀씀이 자체는 크게 줄었지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엔 돈을 아끼지 않는 게 최근의 소비패턴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시장이 둘로 쪼개지는 '소비양극화'시대는 이젠 쾌쾌먹은 옛얘기가 됐다.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득수준보다 한단계 높은 소비와 한 단계 낮은 소비를 동시에 하는 이른바 "1인 소비 양극화"가 최근의 소비트렌트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넷쇼핑몰에 근무하는 이소은씨(25)는 자신을 '실속형 명품족'으로 부른다.


이 씨는 올해 취직 후 월급을 받으면서 80만원의 거금을 들여 '루이뷔통'가방을 구입했다.


그렇다고 이씨의 씀씀이가 헤픈 것은 아니다.


그가 즐겨입는 옷들은 저가이면서 품질은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것으로 주로 동대문시장이나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구입한다.


"합리적 소비 습관을 유지하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이씨의 쇼핑철학이다.


이러한 원칙은 다른 소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씨가 쓰는 화장품도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그는 품질이나 기능차이가 크지 않은 색조화장품 등은 '미샤' 등 국산화장품을 애용한다.


하지만 로션 에센스 등 기초화장품은 개당 10만∼20만원하는 명품을 구입한다.


회사원 송용현씨(34)는 사내에서 소문난 '멋장이'로 통하지만 그가 걸친 옷들이 모두 고급브랜드나 명품은 아니다.


그는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페라가모''조르지오 아르마니''불가리' 등 명품 넥타이를 하나씩 구입한다.


최근엔 해외로 출장가는 친구를 통해 면세점에서 '발리'구두도 한켤레 구입했다.


하지만 양복이나 와이셔츠 등은 백화점 세일제품을 선호한다.


자신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제품에 돈을 쏟아 부을 '여력'을 만들기 위해 관심이 덜한 제품엔 최대한 '짠돌이'소비를 한다는 얘기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김익태 수석은 "한 사람의 소비자가 돌출적인 소비와 절약이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것은 '평균적인 소비자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1인소비 양극화'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생산기술의 혁신으로 가격은 하락하고 품질은 전반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조공정의 자동화,온라인화를 통한 대량구매,마케팅 비용의 절감 등으로 업체들이 원가를 낮추면서 품질을 높이고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관심이 덜한 제품을 구입할 때 그만큼 절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제품은 많은 비용을 들여 구입함으로써 만족도를 높이는 이러한 소비는 결국 가치지향적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불황이란 변수에다 '웰빙' 등 사회트렌드가 맞물려 '1인 소비양극화'로 대변되는 가치지향적 소비추구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1인 소비 양극화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2년 명품으로 통하는 루이뷔통의 매출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루이뷔통재팬은 2002년 불황속에서도 도쿄의 명품거리 오모텐산도(素參道)에 최고급매장을 잇따라 개설하며 '나홀로 호황'을 구가했다.


일본에서는 이를 '일점 호화소비(一点 豪華消費)로 부르고 있다.


한개 정도는 최고급품으로 구매한다는 의미다.


미국에서도 일상용품은 값싼 제품을 쓰면서 특정용품에 고급소비를 집중한다는 '로케팅(Rocketing)' 트렌드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1인소비 양극화''일점호화소비''로케팅 트렌드' 용어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고급품을 사고 싶은 소비 심리가 불황이란 경제적 제약과 맞물려 등장했다.


저가격이면서 고품질인 대중제품과 고가의 명품이 공존하는 시장에서 기업들도 마케팅 전략을 분명히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감성적 가치를 안겨줄 명품브랜드를 만들거나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들거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가치 지향적'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