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씨티그룹이 한미은행 주식 100% 인수를 선언함에 따라 한미은행은 증권거래소 상장 14년6개월 만에 자진 상장 폐지의 길을 걷게 됐다. 증권거래소의 유가증권 상장규정에 따르면 주식 분포와 관련, 소액주주의 수가 200명 미만이거나 소액주주 보유 지분이 10% 미만인 경우, 또는 최대주주 보유 지분이 80% 이상인 경우를 상장 폐지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미은행의 경우 씨티그룹이 최소한 80% 이상의 지분 보유 방침을 천명한 만큼 이 목표를 달성할 경우 한미은행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돼 별도의 절차 없이도 2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상장폐지가 이뤄지게 된다. 씨티그룹은 그러나 칼라일로부터 넘겨받는 36.6%를 포함, 80% 이상의 지분 확보를 위한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함으로써 조기 상장 폐지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관측된다. 거래소 규정상 유가증권의 상장폐지 신청은 이사회 및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치면 언제든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씨티그룹이 한미은행 주식의 공개매수에 성공, 소액주주 반발 등 상장 폐지의 장애 요인들을 최소화하면서 상장 폐지를 원활히 추진해 나갈 수 있을 지가 시장의 관심사다. 한 증시 전문가는 "씨티그룹측이 80% 이상의 지분 확보에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점을 볼 때 이미 주주들과 내부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한미은행이 상장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인 만큼 주가도 약세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미은행이 상장 폐지된 뒤에도 계속 주주로 남기를 원하지 않는 소액주주라면 보유 주식을 장내 매도하거나 씨티그룹측이 주당 1만5천500원을 제시한 공개매수에 응하는 것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미은행의 상장 폐지 신청에 대한 증권거래소의 승인 여부가 관건이라 할수 있다. 거래소 유가증권 상장규정에 `공익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만큼 규정상으로는 상장 폐지를 불허할 장치는 마련돼 있는 셈이다. 특히 `공익'이라는 추상적 문구가 포함됨으로써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한미은행의 상장 폐지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거래소는 그간 상장 폐지를 신청하는 기업들에 대해 주로 `투자자 보호'여부에 대한 판단을 중시, 관행적으로 최근 거래 가격에 10% 가량의 프리미엄을 붙인 가격에 공개 매수가 이뤄진 경우는 상장 폐지를 승인해 왔다. 씨티그룹이 정한 주당 인수 가격은 과거 30일간의 한미은행 평균 종가인 1만4천530원에 비해 6.7%, 과거 6개월간 평균 종가인 1만3천228원에 비해서는 17.2%의 프리미엄을 부여한 것이다. 한편 한미은행처럼 외국인이 최대주주가 된 뒤 자진 상장 폐지한 사례는 쌍용제지(1999년 6월), 한국안전유리(2000년 5월), 대한알미늄(2001년 3월), 송원칼라(2001년 12월) 등으로 이들 기업은 모두 장내 공개 매수를 통해 소액주주 지분을 사들였다. (서울=연합뉴스) 권정상 기자 ju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