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자리 2백만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엊그제 고건 총리가 '올해 중 55만개' 일자리는 중복이라며 정부의 일자리 슬로건에 허수가 많음을 '자복'한 바로 다음날 이번에는 2백만개라니 당혹감부터 앞선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일자리를 놓고 숫자놀음은 안하겠다고 말한 것도 바로 지난주였으니 이를 보도한 신문 활자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하나의 화려한 수사학을 듣게 되었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일자리는 경제가 살아나고 기업가들이 열심히 투자활동을 벌이며 교육계가 부지런히 산업인력을 공급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군대가 작전명을 달아 고지를 탈환하듯이 해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 만들기에 어느 나라보다 정부가 앞장서 뛰고 있는 영국도 그렇다. 97년 총선에서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18년 동안 장기 집권한 보수당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총리에 당선됐을 때 주류 우파 진영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좌·우파를 모두 어우르는 이른바 제3의 길이라는 블레어의 중도 정치 이념에 의해 보수당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의 깃발이 내걸릴 만했지만 영국 정부는 전혀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블레어의 중도 노선은 오른쪽에서 보면 좌파같고 왼쪽에서 보면 우파 같은 모호한 색깔을 띠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오히려 신자유주라고 할 만했다. 바로 그 때문에 영국의 좌파는 블레어를 일컬어 '치마를 입지 않은 대처'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는 기업 규제를 풀고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대처 시절의 강경노선을 유지했다. 기자가 말하려는 점은 좌파 정부의 영국에서조차 일자리 창출연대 등 노·사·정 협의에 토대를 둔 코포라티즘(corporatism·조합주의)은 설자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 창출에 나설 경우 노동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 역시 문제였다. 사회적 연대의식이 강한 좌파 성향의 유럽에서도 네덜란드나 아일랜드 등 일부에서만 경제가 파탄에 직면한 긴급한 상황에서나 사회연대가 나타났을 뿐이다. 독일 역시 90년대 후반 '고용을 위한 사회연대'를 구성했지만 결국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제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창출 계획을 들여다 보면 숫자 꿰맞추기에 다름아니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경제성장률에 따른 새 일자리 1백50만개에 서비스업 20만∼30만개,일자리 나누기 20만∼30만개 등을 적절히 얽어매 2백만개를 맞춰 놓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매년 경제성장에 따라 3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치적 쇼' 같은 기분마저 든다. 오늘날 우리 경제의 심각한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신용불량자 문제만 해도 그렇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 실업률을 7%대에서 3%대로 인위적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무리한 내수부양 정책을 폈던 것이 지금의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경제에 공짜가 없는 것이고,작위적 정책은 반드시 후유증을 부른다는 것을 이 정부는 그새 잊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럽식 일자리 연대를 생각해보는 것이야 자유지만 역시 바늘을 허리에 꿰어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억지 춘향식 일자리 정책은 그 자체로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노동시장의 구조를 악화 내지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 정부는 아는지 모르는지….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