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민족을 단위로 한 국가가 등장한 것은 15세기말∼16세기초 부터였다. 스페인 영국이 앞장섰고 프랑스가 뒤따랐고(16세기말),독일 이탈리아는 1870년대에 겨우 민족(국민)국가를 건설했다. 그나마 독일은 같은 게르만 민족인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채였다. 씨족,부족,지방(영주)공동체를 거쳐 민족공동체로 발전하는데 유럽은 이처럼 느렸다. 이에 비해 중국은 진(秦)의 통일(221년),우리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936년)때 이미 민족국가를 건설했다. 반면 3백여 번(藩)으로 분열됐던 일본은 명치유신(1868년)으로 민족국가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규모있는 현존국가를 기준할 때 우리는 역사상 가장 일찍 민족국가를 형성한 선구적 민족 중 하나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첫 단계를 단축은 시켜도 비약은 할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지언이다. 몽골,러시아,소련으로 계속된 제국의 지배로 민족 공동체 단계를 경험하지 못한 구 소련 소수민족들은 소련 붕괴후 역사발전의 다음 단계인 세계공동체·세계국가로 전진하는 대신 민족국가 건설로 후퇴했다. 오스만 터키, 유고슬라비아 연방 등 발칸 소수민족도 민족국가 건설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민족간 전쟁을 촉발했다. 아프리카의 민족간 전쟁,체첸 사태도 마찬가지인 역사적 필연이다. 민족공동체가 지역·국제공동체를 거쳐 세계공동체를 지향함에 따라 국가조직도 민족국가에서 국가연합·초국가를 거쳐 세계국가로 바뀐다. 시장형태는 국민시장에서 국제시장·지역연합시장을 거쳐 세계시장으로 발전하고 경제활동단위도 결국 세계경제로 거대화·단일화된다. 경제통합이론으로는 자유무역지역(FTA)·공동시장과 경제동맹·초국가를 거쳐 세계경제로 끝을 본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공동시장에서 출발하여 경제동맹 단계를 거의 종료하고 전 유럽을 구성원으로 하는 초국가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반해 외양은 초국가지만 실질적으로 민족국가인 미국은 이제 겨우 캐나다,멕시코와 통합의 가장 유치한 단계인 FTA 협정을 맺고 있다. 이런 미국이 4단계를 앞선 세계화를 강요하는 것은 제국주의적일 뿐 역사의 필연은 아니다. 이같은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1천여년 전에 민족국가를 건설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미 오래전에 벗어났어야 할 민족주의에서 한 걸음도 못나가고 있다. 자원부족형 소규모 경제국이기에 무역과 자본협력 없이 하루도 생존할 수 없는 우리가 단 한 나라와도 경제통합협정을 못맺고 있다. 소국이기에 세계화를 향한 역사흐름을 리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국이므로 통합과 세계화로 가는 조류에서 벗어나면 민족의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는다. 이제 겨우 칠레를 상대로 FTA를 형성하여 경제통합의 막차를 타려는데도 '쌀 시장개방은 안된다, 스크린쿼터는 축소할 수 없다, 자동차 관세는 낮출 수 없다'는 등 보수 아닌 반동의 목소리만 혈서·할복 등 야만행위와 더불어 커질 뿐 역사적 진전을 위한 조처는 하나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필지면적 3㏊,단위 경작면적 15∼20㏊면 쌀 생산비가 미국보다 싸진다는 것은 미작 농업경제학자의 일치된 의견이다. 또 서산의 아산농장,고흥의 죽암농장을 비롯한 수많은 농경영 사례에서 십수년 전부터 증명되고 있다. 80만㏊를 3㏊ 단위로 경지정리하면 쌀 문제는 해결된다. 그런데 애써 3㏊로 경지정리된 아산농장은 10a 단위의 자투리 땅으로 쪼개 팔리고 있다. 맨몸으로 뗏목타고 남태평양을 여러날 표류해도 햇볕으로 인한 화상은 커녕 피부색 하나 변치 않는 엉터리 할리우드 영화(Cast Away)에 밀려 도태될 만큼 수준낮은 영상문화라면 그런 문화는 보호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나 시장점유율 51%는 최근 한국영화의 비약적 해외진출과 더불어 우리 영상문화가 수준 높고 경쟁력 있다는 것을 실증한다. 시대를 선점할 정치와 정책이 간절히 필요한데 그는 없고 시대를 역행하는 말만 무성하다. 선진 진입은 커녕 후진으로의 침몰이 걱정됨은 한낱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