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창업해서 성공할 확률이 15%밖에 안된다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감안하면 한두번의 실패는 사업 세계에서 필수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중소기업청과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공동으로 창업실패사례공모전을 열었다.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창업 실패 체험담을 모아 책이나 기사로 소개,수많은 예비창업자들에게 생생한 교훈과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본지는 이번 공모전 수상작들을 중심으로 '창업실패기'를 시리즈로 내보낸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본명과 사진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 43세의 김인철씨(가명). 내년 4월이면 지금 하고 있는 A편의점 문을 닫을 예정이다.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져 생계 유지가 안되기 때문이다. 현재 선배가 경영하는 조그만 회사에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가 이처럼 막다른 골목길로 몰린 이유는 간단하다. 올 1월 25평짜리 자신의 가게와 3백m 떨어진 곳에 50평짜리 B편의점이 들어선 것. B편의점 바로 위엔 대학 기숙사가 있고 상권이 잘 발달돼 있어 손님들이 차단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까지 하루 평균 1백50만원이던 매출이 1월을 고비로 하락세로 돌변했다. 2월엔 90만원,3월엔 80만원,현재는 50만원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계약을 해지하고 문을 닫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본사와 맺은 계약서엔 신규 점포의 경우 2년의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위약금 1천5백만원을 물게 돼 있지요. 이 때문에 하는수없이 문을 열고 있는 거예요." 그나마 다행인 건 본사가 '최저수익보장제'를 도입,월 1백50만원 수익은 챙기게 해줘 근근이 버티고 있다. 김씨가 편의점 사업에 나서게 된 것은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당시 김씨가 다니던 굴지의 대기업은 자금난에 봉착,대대적으로 구조조정 작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지방 공장들을 떠돌아 다니다가 2001년 8월 회사를 그만뒀다. "1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나니 처음 두달은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위장병과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어요.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실업에 따른 고통이 밀려와 잠을 이룰 수 없더군요." 김씨는 사표를 낸 뒤 곧바로 재취업을 시도했다. 50여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런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3개월을 허송세월한 뒤 퇴직금 4천만원으로 소자본 창업을 하기로 했다. 우선 서점부터 찾았다. 창업절차,상권분석,점포구입,종업원관리,자금조달,사업계획서 작성 등 창업가이드 서적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창업설명회에도 참석했다. "업종을 선정할 때 맨 먼저 적성을 고려했어요.일단 영업 체질이 아니라서 사람을 찾아다니는 업종을 제외했지요. 기관지와 위장이 좋지 않아 음식점이나 주점은 아예 고려대상에서 뺐습니다.여기에 4천만원 투자금까지 감안하니 대상 업종이 슈퍼마켓 문구점 비디오가게로 좁혀지더라고요." 업종은 슈퍼로 정했으나 적당한 점포를 구할 수 없었다. 권리금과 보증금이 너무 비싸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게 편의점이었다. 그 다음엔 한달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장체험을 하기로 했다. 이때의 체험은 편의점 경영자가 됐을 때 유용하게 활용됐다. 편의점 장사의 핵심인 아르바이트 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이때 쌓인 것. 창업계획은 점차 구체화됐다. 2001년 11월부터는 편의점들의 사업설명회에 나가 여러 업체들을 비교해 봤다. 2002년 2월 드디어 A편의점을 내기로 결정,본사와 계약을 맺었다. 가맹비 보증금 등 4천만원을 입금하는 것으로 사업은 시작됐다. 그해 4월26일 마침내 '내 점포' 문을 열었다. 수익의 60%를 본사에 내고 40%를 가져가는 경영위탁방식이었으나 매출만 많이 올리면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았다. "6월15일 5월분 이익을 회사로부터 배분받았지요.매출이 월 3천만원이었으나 본사 이익과 판매관리비 등을 빼고 나니 2백50만원이 통장에 들어와 있었어요.아르바이트 비용 1백만원을 주고나니까 1백50만원 남더라고요.아내와 하루종일 매달려 고생한 대가치고는 너무 허무했습니다." 다행히 월드컵을 계기로 매출이 쑥쑥 늘기 시작했다. 8월 이후엔 하루 1백40만원을 꾸준히 올려 한달이면 2백80만원 수익이 생겼다. 한 1년만 지나면 회사 다닐 때보다 수입이 더 낫겠다 싶어 힘들어도 흐뭇했다. "2003년 1월이었어요.여느 때처럼 아내와 교대하려고 밤 11시께 점포에 나갔는데 아내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더라고요.우리 가게 바로 옆에 매장 규모가 2배나 되는 경쟁점포가 들어선다는 거예요." 불길한 예감은 곧바로 현실화됐다. 매출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작은 동네라서 경쟁점포가 생기지 못할 것이란 판단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불황으로 마땅히 할 만한 사업이 없자 너도나도 편의점 사업에 뛰어든 결과였다. 그래도 김씨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첫 사업은 일단 절반의 실패라고 생각합니다.창업비용도 대부분 돌려받거든요.샐러리맨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