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87센트.그것뿐이었다.그 중 60센트는 동전이었다.야채가게나 푸줏간에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악착을 떨어 한푼두푼 모은 것이었다.세번이나 세어 봤지만 1달러87센트였다.그리고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오 헨리의 '현자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ㆍ1905)에서 아내는 남편을 위해 황금폭포같은 머리카락을 팔아 백금시계줄을 산다. 짧은 머리를 보고 놀란 남편에게 아내는 "머리카락은 세도 제 사랑은 셀 수 없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빗을 사온 짐은 얘기한다. "선물은 잠시 그냥 둡시다.쓰기엔 너무 좋으니까.폭찹이나 만들어요." 2001년 한국영화 '선물'은 이보다 더 눈물겹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는 이름없는 삼류 개그맨 남편을 위해 아픈 사실을 숨기고 방송사 PD를 찾아가 남편을 출연시켜 달라고 애걸도 해보지만 퇴짜맞는다. 아내의 병을 알게 된 남편은 간신히 나간 개그콘테스트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박수를 받는다. 남편을 두고 떠나는 아내의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없어도 당신이 가졌던 꿈들을 잃지 말길.꼭 약속해 줘. 당신이 무대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모습,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데.그리고 그거 알아? 당신은 세상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걸." 연말을 맞아 국내 한 기업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상당수가 펜과 열쇠고리같은 선물은 받기 싫고,현금과 선물 중 현금이 더 좋다고 했다는 소식이다.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현금이나 백화점상품권이 꼽혔다는 백화점 조사결과도 나왔다. 졸업선물로 영어사전이나 옥편,입학선물로 만년필이나 책을 주던 일은 물론 첫월급을 타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리는 일도 보기 어렵다. 선물이란 '현자의 선물'에서 델라가 고민했듯 '근사하고 흔하지 않고 잘 어울리면서 받는 사람의 격을 높여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물의 본질은 뭐니뭐니 해도 받는 사람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하고 정성어린 마음일 게 틀림없다. 손자를 위해 운동화를 사주고 먼길을 걸어서 돌아오는 '집으로'의 외할머니 심정같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