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잘살게 하는 데에 있다. 우리가 정치자금 문제를 우려하는 것은 돈 문제 때문에 정치가 국민을 못 살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특정인이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쓰다보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법이나 정책이 왜곡될 수 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려다 보면 다수의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법이나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정치자금이 제공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그러나 정치자금문제를 해결한다고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잊혀져선 안된다.불법정치자금을 막는다고 국민이 못사는 길로 들어선다면 그것 역시 불법정치자금의 존재 못지않게 불행한 일이다. 지금까지 드러나고 있는 사실들로 보면 과거 우리나라의 성공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왕조 시대에 중국에서 관직을 얻는다는 것은 사냥허가를 받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던 경제사가 에릭 존스의 말이 기억난다. 관직이란 자신이 다스리는 민중들의 돈을 뜯을 수 있는 면허장 같은 것이었다는 것이다. 녹봉이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우리 역사 속의 관직이라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고을 원님이 되면 적당히 백성을 등쳐 먹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아직도 그런 전통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훌륭했던 사람들이 일단 정치인이 되고 나면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였던 것들도 결국 그런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 할지 모른다. 그 배경에는 개입주의적 법과 정책들이 있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백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보니 백성들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 주지 않을 수 없다. 10~20년 전만 해도 규모가 크건 작건 관공서에 상납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장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수많은 개입주의적 법들이 관료들에게 재량권을 주었고, 그것으로 관료들은 백성들의 운명을 틀어쥘 수 있었다. 그들의 하기에 따라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망해야 했다. 이제 그 범위가 대기업들로 좁혀져 가고 있지만, 입법자와 관료들이 사업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틀어쥐고 있는 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요구하고, 그 기반이 되는 법과 정책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정치자금 문제의 원인을 고비용의 정치구조에서 찾는 것은 주객이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하든 비용을 줄이기는 힘들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는 망하지 않기 위함이다.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적자가 나서 부도를 면할 수 없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비용을 줄이지 않아도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고통을 감수하면서 비용을 줄이려 하겠는가. 돈을 요구하더라도 기업인들이 주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아무리 할 일이 많더라도 정치비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선거공영제 역시 확실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선거비용을 국가가 모두 댄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을 받지 않겠는가. 선거에 쓰지 않더라도 돈 쓸 일은 무궁무진하다. 결국 핵심은 정치인이 돈을 요구할 때, 기업이 거부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모아진다. 그러려면 법과 정책이 특정인과 특정집단의 이익이나 손해와 무관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는 행위자가 누구인지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도둑질을 했으면 그 행위만을 가지고 판단하지 가난한 사람이 했는지 부자가 했는지는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행위자가 누구인지를 가리기 시작하면 불필요한 재량권이 생겨나고 입법자와 집행자들은 돈의 유혹으로 빠져들게 된다. 시장경제원리는 그런 원칙 위에 서 있다. 각자에게 자유를 주되, 잘되든 못되든 자신이 책임진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가해자가 누구였던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 원리가 확고하게 자리잡는다면 정치자금을 요구하지도 못할 것이고,주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