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한 불 껐지만 불씨는 여전 > 최근 LG카드의 유동성위기로 온 나라가 술렁이고 있다. LG카드는 현금서비스 전면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와 어음 만기도래로 1차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지만 채권단이 2조원의 신규자금 지원을 결정하면서 간신히 숨통이 트인 상태다. 그러나 LG카드 소지자들은 현금서비스를 받지 못해 큰 피해를 입었고 타 카드사들은 LG카드 소지자를 대상으로 현금서비스 한도를 대거 줄여 ‘카드 돌려막기’를 했던 일부 고객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지난 11월25일 LG카드 이종석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부실자산 클린화와 조기 투자자 유치 등을 골자로 하는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자구안에 따르면 현재 109개 영업점을 50개로 축소하는 한편 8,400명의 직원을 연말까지 2,100명 가량 줄인다는 내용이다. 또 자산 클린화를 위해 내년까지 총 9조6,000억원(2003년 5조원, 2004년 4조6,000억원)의 부실자산을 상각 처리한다고 덧붙였다. 이사장은 “유동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경영권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고 추가 자본 유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LG카드는 이 같은 인력감축과 자산 상각 등으로 현행 24조원대에 달하는 카드자산을 20조원 규모로 몸집을 줄인 뒤 2005년부터는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또한 LG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LG카드의 경영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해 대주주 책임하에 12월로 예정된 3,000억원 유상증자와 내년 상반기 7,000억원의 추가자본을 조달해 총 1조원의 자본을 확충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LG카드는 연말까지 카드채 3,000억원과 기업어음(CP) 1조9,000억원을 비롯해 자산유동화증권(ABS) 1조4,000억원을 상환해야 하고, 내년 1/4분기에는 총 3조9,000억원에 달하는 각종 채권의 만기가 도래하는 등 아직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다행히 11월 26일 정부의 중재로 LG카드의 채권단인 은행, 증권, 투신 등이 앞으로 1년간 채권 만기를 연장하기로 긴급 결의했다. 때문에 당장 LG카드의 유동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LG카드는 신용을 중시해야 하는 신용카드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위기가 터져 고객들로부터 엄청난 신용을 잃은 것이 가장 큰 손실이다. 신용을 잃은 LG카드가 자구안대로 경영정상화에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의 동의를 끌어들일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LG그룹 계열사인 LG화재는 LG카드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금융전문가들은 “LG카드의 위기는 끝이 아닌 진행형”이라며 “채권단의 자금지원은 유동성 문제만 잠시 해결해줬을 뿐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므로 유상증자에 실패하면 또다시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LG카드의 유동성위기를 사전에 전망했던 세종증권 김욱래 연구원은 “채권단의 자금지원은 LG카드의 유동성을 보강해주기 위해 돈을 꿔준 것이지 정작 필요한 자본확충은 아니어서 여전히 경영정상화에는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신규자금이 계속 들어와야 하는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결국 채권단이 이를 또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권단의 고위관계자는 “LG카드는 올 들어 1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번 현금서비스 중단 사태로 우수고객들의 대거 이탈이 예상돼 경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카드채 문제가 불거졌을 때 회사매각 등을 통해 정리했어야 하는데 결국 시간만 끌어 LG카드의 부실만 키웠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금융전문가들은 LG카드 위기로 불거진 유동성 문제가 타 카드사로 확산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업카드사는 은행권 카드사와 달리 수신기능이 없어 고객관리에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삼성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 등은 모기업에 비해 카드사의 자산규모가 작아 대주주가 충분히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권 카드사는 최악의 경우 모은행과 합병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지난 9월 국민카드는 국민은행과 합병을 통해 KB카드로 거듭났고 현재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는 외환카드의 경우 내년 3월께 외환은행과의 합병이 추진될 예정이다. 신한카드, 우리카드 또한 영업규모가 작아 모은행과의 합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BC카드의 경우는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춰 카드채 위기에서 한발짝 비껴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른 카드사들은 이번 LG카드 사태를 계기로 불량회원 가능성이 있는 회원들에 대한 사용한도 및 현금서비스 한도를 줄여나가고 있다. 삼성카드는 12월부터 한도축소에 나섰고 우리카드 등도 4개 이상의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는 회원들에 대해 한도축소를 실시하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카드도 이번 기회에 회원들에 대한 클린화 작업에 착수, 잠재부실 예상회원이나 회원가입 후 사용실적이 전무한 회원들은 정리해 나갈 방침이다. 신한 및 외환카드 역시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에서는 채권단의 LG카드 신규자금 지원책을 놓고 야단법석이다. LG카드의 심각한 부실 상황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LG카드를 포함한 전 카드사의 부실카드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약 10조~20조원대의 제3차 공적자금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카드채는 예금자보호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탈법적인 방법으로 지난 4월 카드위기를 넘길 때처럼 은행, 보험, 증권 등에 일정 부분을 떠넘겨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카드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씁쓸하다. 1,400만명의 국내 최대 고객을 자랑하는 LG카드의 위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제 카드에 대한 인식이 ‘긁고 보자’에서 서서히 ‘긁지 말자’로 바뀌고 있다. 허우영 기자 kp119@kbizweek.com [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 분석 ] < 고령화 대책 > 정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 검토 방안들을 내놓았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정책방향’이기 때문에 커다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재정경제부가 ‘인구 고령화의 현황 및 정책대응 방향’에서 밝힌 정책방향은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출산장려 정책으로 육아휴직급여 확대와 근무 중 수유시간 의무부여, 출산수당 도입, 만3~6세 아동 보육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현행 60세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고령자 취업차별 금지, 고령자 고용시 장려금 지급, 임금피크제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47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을 개편하고 노인복지체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사회는 2000년에 이미 전체인구의 7.2%가 노인(65세 이상)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유엔이 규정한 고령화사회는 노인층이 전체인구의 7~14%를 차지하는 사회를 말한다. 노인 비중이 14%를 넘어서면 고령사회,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가 된다. 한국은 2019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보고 있다. 일본이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이 24년, 미국은 71년, 프랑스는 115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다. 한국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율 저하다. 15~49세의 가임여성 1인당 평균 출산 자녀수를 의미하는 합계 출산인원은 70년 4.5명이었으나 지난해는 1.17명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한국의 인구는 2023년 5,068만명으로 늘어났다가 2050년에는 4,400여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생산가능 인구(15~64세)는 2000년 3,370여만명에서 2050년 2,440여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발표한 고령화 대책은 전반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문제는 오래전부터 여러 분야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는데도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호들갑을 떠는 ‘뒷북치기’ 행정이라는 사실이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뒤에야 ‘정책 대응방향’이 나왔다는 사실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방치해 왔다는 방증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10ㆍ29 부동산 종합대책’에 불만을 터뜨린 것은 부동산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나서야 뒤늦게 종합대책을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상당수 국민들이 ‘집값안정’이 아니라 ‘집값하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현실 변화를 예측하는 선도적인 정책을 공무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두 박자 느린 뒷북치기 행정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반 박자 또는 한 박자 뒤에서는 소리를 내줘야 한다. 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