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금 1천8백만원이 8개월째 연체됐습니다. 살고 계신 집이 1백평이 넘던데 빨리 갚으시죠."(LG카드 채권추심팀) "3백만원 탕감해 주지 않을거면 앞으로 전화도 하지 마세요."(벤처기업 직원 강모씨ㆍ32세) 신용불량자 급증세가 지속되면서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실업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빚을 갚지 못하는 신용불량자가 많지만 최근엔 '배째라'식 연체자도 급증하고 있다는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특히 정부와 일부 금융기관의 '오락가락' 구제책이 이들의 도덕적해이만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 채무 흥정하는 신용불량자들 자신의 빚을 놓고 채권기관과 흥정하려 드는 연체자가 크게 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KAMCO) 국민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채무감면 정책을 쏟아낸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과거엔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던 채무자들이 최근 들어 먼저 연락해서 '얼마를 깎아주면 나머지를 내겠다' '채권을 빨리 상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말 들으면 정말 허탈하다." A카드회사의 추심담당 직원 안모씨(37) 얘기다. 안씨는 자신이 맡았던 다중채무자 박모씨(35ㆍ택배업)의 사례를 들려줬다. 박씨가 최근 전화를 걸어 "다른 곳은 채무를 70% 탕감해 주거나 20만원만 결제하면 채무상환 시기를 미뤄 준다던데 그렇게 해줄 수 없느냐"고 묻기에 안된다고 말하자 그 후로 또다시 연락두절 상태라는 것. 지난달 금융기관들의 신용불량자 구제방침이 잇달아 발표된 후 신용카드 회사들의 연체채권 회수율이 급락했다는 사실은 이같은 도덕적해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LG 외환카드 등 8개 전업 카드사의 연체채권 회수율은 이달 들어 대부분 전달보다 10%포인트 하락해 이번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유흥비 등의 이유로 빚을 진 사례가 많은 20대에서 원리금 탕감요구를 많이 하고 있어 젊은 층의 모럴해저드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 '안 갚고 버티기' 정보사이트 수십개 26일 현재 국내 최대 웹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신용불량자' 카페는 총 2백74개. 이 중 상당수 카페에서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안 갚고 버티기' 교육을 해주고 있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결국엔 금융회사에서 알아서 깎아주더라는 식이다. 신용불량자나 연체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나는 몇 개월 버텨서 얼마를 탕감받았다'는 내용이 많다. '신용불량자 탈출정보 공유모임'이란 카페에선 '채권추심 불법사례와 대응방안'(삘리리)이란 제목으로 '돈 없을 때 배째라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채권추심 직원의 말 꼬투리를 잡아 협박하면 통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채권추심 직원에게 시비를 건 뒤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나중에 이 내용을 금융감독원이나 인터넷사이트에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라'는 식이다. 이와 함께 신용불량자들을 대상으로 주민등록번호나 국적을 바꿔 준다며 유혹하는 사기꾼들도 판을 치고 있다. 한 은행 임원은 "빚을 졌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채무자가 반드시 갚도록 하는 원칙을 세우는게 도덕적해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