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기업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개미와 진딧물 같은 공생관계일까.아니면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의 입장일까.아무래도 정치권이 우월한 위치를 이용해 착취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정치인들은 대권을 차지해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십분 이용해 기업인들을 압박해왔다.그것도 정치를 잘하겠다는 진솔한 약속도 없이 정치를 하려면 돈이 든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말이다. 사실 우리사회에서 기업을 하려면 기업활동 이외에 적잖은 준조세 성격의 돈이 든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웬만큼 덩치가 큰 기업들은 돈을 내지않고 배겨낼 도리가 없다. 또 돈을 내고도 떳떳하기보다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이다.오죽하면 기업들이 임직원 명의로 정치헌금을 하겠는가. 법정한도액을 초과하다 보니 편법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공여하다 보니 하소연할 데도 딱히 없다. 검찰수사가 시작되면 불려다니느라 곤욕을 치를 뿐이다. 그러니 '돈주고 뺨맞는다'는 하소연을 할 수밖에 없어 측은한 느낌이 든다. 정치인들은 기업을 '황금알 낳는 거위'정도로 치부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퍼 써도 '마르지 않는 샘물'로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하고 있는 기업인들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생각한다면 무지도 보통 무지가 아닐 터이다.이런 무지는 죄다. 혹은 대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라면 무슨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을 만한 지고의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아무래도 정치인과 기업인은 전생에 '빚쟁이' 관계였던 것이 확실하다.그렇지 않고서야 선거때만 되면 맡긴 돈 찾아가듯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물론 이때다 싶어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이라는 심정으로 대권 전망이 있다고 생각되는 정당과 정치인에 돈을 듬뿍 안기는 기업도 없지 않다. 그런 기업이야말로 생산력 혁신이나 기술개발로 승부하지 않고 정치 로비력으로 시장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부도덕한 기업이며 얌체기업이다. 시장의 경쟁력이 정치권에 줄서는 걸로 가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낸다. 왜 울면서 겨자를 먹는가. 돈을 주자니 마음은 내키지 않고 또 실정법을 위반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돈을 주지 않자니 보복과 후환이 두렵다. 그래서 보험 드는 심정으로 돈을 준다. '미운 놈한테 떡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정치후원금을 내는 상황을 두고 어떻게 자발적인 정치헌금의 성격을 읽을 수 있겠는가. 결국 죄많은 나라에 태어나 기업을 하는 죄로 선거때만 되면 '먹고 떨어져라'하는 심정으로 돈을 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생각하면 우리기업들처럼 불쌍하고 억울한 기업도 없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도 해야하고 자칫 잘못하면 경쟁사에 밀리기 십상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기업을 하는데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때만 되면 '봉'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때를 대비해 틈틈이 비자금을 만든다. 가뜩이나 분식회계, 불투명 경영으로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불법 정치자금 문제만 터지면 검찰에 불려나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음으로써 불법행위 집단으로 매도되고 국제적인 신인도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왕 투명한 정치자금 개혁을 하는 마당에 법인세 1%를 의무적인 정치헌금으로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참으로 편리한 발상이다. 법인세 1%만 내면 음습한 정치자금을 달라는 이제까지의 관행이 없어질 것으로 확신하는가. 오히려 돈은 음성적으로 줄만큼 주고 그 이상으로 법인세 1%를 착취당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인가. 이제 정치권이 우월한 위치를 이용해 기업을 닦달하는 상황은 끝나야 한다. 왜 기업들에 투명경영하라고 다그치면서 비자금을 조성하도록 부추기는가. 한국정치는 더 이상 '돈먹는 하마'가 돼선 안된다. 또 3류 정치가 2류 기업들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멍에를 지우는 후진적인 정치상황이 반복돼서도 안된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나란히 법정에 서는 낡은 관행이 깨어지길 바란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