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똑게 똑부 멍게 멍부'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었다. 직장 상사의 유형을 '똑똑함과 멍청함,부지런함과 게으름'의 특성으로 조합해 분류한 약칭이다. 그 중 가장 바람직한 유형은 '똑게'라 했던가. 이를 원용한 새로운 인성 분류법이 하나 등장할 모양이다. '똑大멍長 멍大똑長'이 그것이다. 똑똑한 대통령에 멍청한 장관,멍청한 대통령에 똑똑한 장관이란 뜻이다. 지난주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기발한 분류론을 제기했다. 김 위원의 주장인즉,"과거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의 식견이 부족했으나 조순 부총리나 문희갑 경제수석 같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토지공개념을 추진하면서 보완해 국정이 제대로 이뤄진 반면 지금은 대통령의 부동산에 대한 인식은 정확한데 경제부총리나 건설교통부 장관의 문제인식은 대통령에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이분법은 단순명쾌한 맛은 있다. 하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운 구석도 적지 않다. 우선 노태우정부 때 도입된 토지공개념 제도 중 토지초과이득세 등은 이미 위헌 판정을 받아 실효됐기에 과연 조 전 부총리나 문 전 수석이 '똑장'이라 단언할 만한지 의문이다. 현 정부의 상황이 '똑대멍장'인지도 좀 더 신중히 따져볼 일이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코드'에 맞아 입각한 각료들일텐데 그들이 멍청해보인다면 이건 그저 각료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혹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이 친구가 현 경제팀을 옹호하려는구나' 내지는 '그럼 대통령이 멍청하다는 뜻이냐'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펴기 위해 지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 위원의 '똑대멍장'론을 글의 재료로 삼은 것은 때마침 노 대통령 재신임 문제와 연계돼 개각이 사실상 '예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장관의 조건 중 명석함은 기본조건일 뿐이다. 대통령과의 코드도 마찬가지다. 진짜로 중요한 고려사항은 나라가 처한 상황이다.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못지않게 현 상황에 당장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5년 임기 중에도 부침을 겪게 마련인 경제문제를 다룰 장관의 경우 더욱 그렇다. 과거 정부에서는 경제 장관,특히 부총리의 경우 '안정형 성장형 개혁형 관리형' 등으로 그때 그때 경제 상황에 따라 다른 성향의 인물을 앉히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물론 때로는 그 선택이 잘못돼 좋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일례로 김영삼 정부 막바지에 부총리를 지냈다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렸던 강경식씨의 경우 '정권 초기에 부총리를 맡았더라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관료들이 많다. 강 전 부총리의 능력은 '위기 관리'가 아니라 '비전 수립'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필자가 YS정부의 첫 조각을 앞두고 심심풀이 삼아 당시 경제기획원 과장급들을 대상으로 '부총리감으로 누가 좋겠느냐'는 설문을 돌렸더니 70%가량이 강 전 부총리를 꼽았던 기억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된 선택을 피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답은 뻔하다. 대통령이 경제상황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적재적소'뿐 아니라 '적재적시'의 인선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제 노 대통령이 작금의 경제상황을 살피고 거기에 '코드'까지 맞춰서 장관감을 고르려면 지금부터 서둘러도 시간이 그리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