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또다시 불법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은 30일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비공개간담회를열고 정치자금 제도개선이 전제되지 않으면 정치자금 요구에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SK사태로 촉발된 정치자금 수사가 다른 기업으로 확산돼 기업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갈 위험에 처하면저 정치권에 대해 심한 불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자금의 수요처인 정치권이 먼저 정치자금을 정당하게 낼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면 기업들이 안심하고 돈을 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돈은 돈대로 내고 기업인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표명이라는 것이다. 회장단 회의에서 총수들은 정치권에서 요구해서 돈을 냈을 뿐인데 이로인해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되고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상황으로 몰린데 대해 상당한 불만과함께 피해의식을 표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와함께 전경련은 기업이 정치자금을 정당에 직접 내는 대신 경제단체 등 제3의 기관을 통해 간접 전달하는 등 정치자금 제도 개선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기업이 정당한 정치자금만 내겠다는 말은 여러번 반복됐지만 실행된 적이 없어 이번에도 불이익을 받더라도 불법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는 재계의 강력한의지와 정치제도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 한 공염불로 그칠 공산이 크다. 현재의 고비용 정치구조가 계속될 경우 불법 정치자금 수요는 여전할 것이고 이에따라 검은 돈을 매개로 한 정경유착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손길승 SK회장은 법에 따른 정당한 정치자금만 내겠다고 공언했으나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재계 스스로의 신뢰성에 먹칠을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관행으로 굳어진 정치자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고비용정치구조나 정치자금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재계는 정치권에 대해 이런 제도개선을 요구하는데 그치지 말고 재계 스스로의 투명경영과 정도경영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이 정치권의 요구에 못이겨 정치자금을 건넨 경우도 많지만 특혜를 노리거나 잘 봐 달라고 자금을 제공하는 등 정치자금에 관한한 재계도 반성할 점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신삼호기자 s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