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錫勳 < 성신여대 교수·경제학 > 한국경제의 핵심 현안은 신용불량자 문제다. 이미 신용불량자가 3백40만명을 넘어섰고,여기에 향후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는 잠재적인 신용불량자도 1백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국민들은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회사들의 부실을 정리해 주었다. 몇 해가 지나지도 않았는데,금융회사들이 또 다시 부실대출을 통해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였으니,도대체 한국의 금융회사와 금융감독기관은 무슨 염치로 국민들을 보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보면 신용불량자 문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 전체적으로도 경기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잠재적인 사회불안 요소다. 현재 일부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원리금을 감면하는 채무재조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신용회복지원프로그램도 있으며,최근에는 국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공적기관인 자산관리공사는 원리금을 최고 70%까지 깎아주는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신용 불량자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인정하더라도 이같은 신용불량자 대책은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대폭적인 원리금 탕감은 개인들의 극심한 모럴 해저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원리금 감면이 가능한 상황에서 누가 빚을 갚으려고 하겠는가. 금융회사들과 공적기관이 앞다투어 시행하고 있는 원리금감면제도는 신용불량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부의 조급증에도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들의 경영실태를 평가할 때 신용회복지원 실적을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에 대한 평가는 개별 금융회사의 경영성과나 자산의 건전성으로 판단해야 한다. 신용회복지원문제는 개별 금융회사의 전체적인 경영전략과 연계하여 개별 금융회사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감독기관이 신용회복지원실적이라는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결국 강제로 금융회사들에 채무조정프로그램을 도입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신용불량자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실 뾰족한 해답은 없다. 일관된 원칙과 정책이 중요하다. 먼저,정부는 신용불량자문제를 일시에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개별 금융회사들의 불량채권을 공적기관이 매입하고,공적기관이 개인들의 원리금을 대폭 탕감해주는 방식을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이같은 방법은 금융회사들의 수익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극심한 모럴해저드를 유발할 것이 명확하다. 또한 금융회사들의 경영실패를 또 다시 국민들이 책임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신용불량자문제는 결국 신용불량자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자신들의 채무를 상환함으로써 해결돼야 한다. 정부는 일괄적인 원리금탕감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점을 천명하여야 한다. 정부정책은 개인들의 소득기회를 제공하는 데 집중되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신용불량자들을 대상으로 공적인 부문에서 소득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신용불량자문제는 개별 금융회사가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며,또한 신용불량자 개인에 대해서도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원인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부는 유흥비를 조달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였고,일부는 영세자영업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려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은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다. 신용불량자문제는 일괄적인 신용회복지원프로그램으로 정리할 문제가 아니라,사정을 가장 잘 아는 개별 금융회사들이 개인들과 일대일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신용불량자문제는 금융회사들이 원인제공자이며,그들이 처리하여야 할 문제다. 또 다시 국민들을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shkang@sungsh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