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조업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회복되면서 살아나고 있다. 미·일 국가대항 야구시합에 비긴다면,9회말 3번 타자가 기력을 회복한 셈이다. 4번 타자인 개인소비도 살아난다면 일본팀은 지난 12년간 장기 부진의 터널을 빠져 나와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다. 올들어 계속된 엔화 강세 국면 아래서 고용 소득 소비가 안정세를 되찾아가는 이른바 자율성장 궤도에 진입,미국을 재역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 정책당국은 불황 탈출을 위해 열 번의 대규모 공공투자에다 제로 금리까지 동원했지만 재정 유동성 디플레 함정에 빠져들었다. 기업들도 설비 고용 채무의 3대 과잉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적자 부실채권 디플레의 3중고에 시달려 왔다. 물론 설비든 재고든 이쯤 되면 바닥을 칠 법도 해 1970∼1985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현재 일본경제의 반전 조짐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경기대책과 구조개혁의 조화이다. 일본내에서 그동안 양비론이 팽배했으나 작년부터 수요창출형 개혁이라는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정권 초기 '개혁없이 경기회복 없다'는 개혁노선을 '경기회복 없는 개혁 없다'로 변경,신규 국채 발행한도를 확대하고 복수연도 세출입균형원칙을 도입해 경기위축을 최소화했다. 수요 창출형 개혁을 통한 신세기 성장 노선을 분명히 제시했으며 세액 공제도 투자비 전액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등 기업활력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둘째,정부가 엔화약세를 지속적으로 유도,수출 제조업의 설비투자 여력을 높였고,자본시장 신뢰성도 한단계 끌어올렸다. 일본은 올들어 9월말까지 무려 1천억달러를 매입,엔고를 저지했다. 구미 투자가들은 달러를 팔아 확보한 엔 자금의 대부분을 일본 증시에 투입함으로써 주가상승을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민간 금융과 자본시장 기능이 활성화되고 있다. 셋째,대형은행과 대기업은 부실채무 정리,상호 보유주식 처분,예금부분 보장제와 시가회계도입 등 일본형 시스템을 수정 보완했다. 자산규모 세계 최대인 미즈호 금융그룹의 수익이 호전되고 있다. 이같은 시장 구조개혁으로 기초가 정비돼 경제가 자율성장 궤도로 진입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회복이라고 속단하긴 이르다. 소비와 투자를 억눌러 온 '미래 불확실성'을 예측가능한 위험으로 바꿔놓았으나 기업의 과잉채무 50조엔을 해결하고,베이비붐 세대의 고비용을 줄이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또 조세와 사회보장비 부담증가,지방 산업 및 고용 악화 등도 경기 회복의 악재가 될 수 있다. 엔화 강세와 각종 개혁안에서 엿볼 수 있는 다음세대 조세부담,사회보장비 부담의 증가 가능성,지방산업·고용의 악화 등은 정책당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악재가 될 수도,호재가 될 수도 있다. 엔고의 경우 내수부진이 원인이라고 본다면 일본정부는 무리한 저지 개입보다는 유효수요 확대 기회로 활용하고,개입하더라도 사들인 달러자금을 미국 채권보다는 아시아 채권시장 육성에 사용해야 한다. 사회 보장제도 개혁에 따른 차세대와 기업의 추가 부담과 관련해서는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일본은 제조업을 근간으로 IT,BT,ET,브랜드 등을 접목한다는 산업기술전략 아래 주력 제조업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민·관이 총력전을 전개중이다. 공공시장 개방,성장분야 확충,자원이동 원활화를 위한 법·제도·인센티브 시스템과 고비용구조개혁,규슈를 허브로 한 동아시아와의 FTA 등 경제연대 강화가 그 수단이다.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앞둔 지금 우리는 일본의 엔고 저지 개입의 비합리성을 지적하고 고비용구조를 개혁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일본 흑자의 동아시아 환류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한 실행계획을 세우고 한·일 양국의 역할을 제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