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정상회담이 한창 추진될 때의 얘기다. 북한측 대표가 느닷없이 '사변'이라는 말을 꺼냈다. 큰 변고나 난리를 뜻하는 사변이라는 말에 우리 측 대표들은 회담 결렬로 착각하고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할 경우에 사변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 같은 언어 이질화는 이산가족상봉과 남북왕래를 통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찬물미역(냉수욕) 무리등(샹들리에) 위생소(화장실)는 그래도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다리매(각선미) 살결물(스킨) 가두녀성(가정주부) 가시아버지(장인) 등은 설명 없이는 좀처럼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다. 일상용어가 아닌 외래어나 전문용어를 접하면 그야말로 해독불능이다. 50여년의 분단이 빚은 우리 언어의 현주소인 셈이다. 북한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철자법개혁과 함께 말다듬기운동 문화어운동을 전개했는데 이 과정에서 언어가 급격하게 변했다. 문맹퇴치사업을 벌이면서는 한자를 배척하기도 했다. 북한은 언어조차도 '혁명과 건설의 힘 있는 무기'라고 여기며 언어정책을 펴고 있다고 한다. 어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통일언어교육 토론회'에서는 남북한간의 언어 이질화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는 북한 초·중·고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가 공개됐는데,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 표준어 등 언어이질화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참석자들은 통일에 대비한 어문교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기에는 반론도 없지 않다. 5천년의 세월을 같이 살아온 민족인데 기껏 50년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다른 표현이나 생소한 단어는 우리 말 어휘가 그만큼 늘어난 것으로 보면 될 뿐,우리말의 동질성 자체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남한내 각 지역의 사투리가 더 이질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남북한간의 언어이질성은 어느 한쪽의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북한의 유물론적 언어관도 문제지만 외래어를 남용하는 우리 측의 책임도 크다. 언어의 동질성 회복은 양측이 책임을 통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