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농산물시장 개방을 예고해 큰 충격을 주었던 세계무역기구(WTO) 칸쿤 각료회의가 결국 결렬돼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하고 폐막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개발도상국들이 외국인 직접투자,경쟁정책,무역 원활화,정부조달 투명성 등을 다루는 싱가포르 이슈에 반발한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농업개방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칸쿤 각료회의가 결렬됐다고 해서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타결이 늦어지고 농산물시장 개방을 안해도 된다고 착각해선 안된다. 유럽연합(EU)이 농업개방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앞으로도 국내 농산물시장에 대한 개방압력은 여전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DDA 협상결과에 관계없이 내년에 쌀시장 개방 유예기간이 끝나 재협상을 해야 하는 터라 더욱 그렇다. 게다가 미국은 벌써부터 지지부진한 다자간협상에 불만을 표시하며 양자협상을 통한 개방압력을 시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 농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건 너무나 분명한 만큼,정부와 농민들은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당장은 개도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는 한편, 쌀이 시장개방에서 예외취급을 받는 특정품목(SP)으로 지정받을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쌀이 특정품목으로 지정돼도 대신 다른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대폭 낮춰야 하는데, 고추 양파 생강 등 관세율이 1백%가 넘는 농산물이 1백42개나 돼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휴경직불제 공공비축제 등을 대폭 확대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해 하루빨리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한가지 강조할 점은 농민단체들이 무조건 시장개방에 반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흉작에다 태풍피해까지 겹쳐 시름에 잠긴 농민들의 막막한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그럴수록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