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9백원짜리 생활용품 세트가 추석 선물로 나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외환위기로 불황이 극에 달했던 98년 이후 5년 만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마트 구로점의 경우 2일 하루 동안 팔린 생활용품 세트 1천여개 중 절반이 9천9백원짜리였다. 구로점 관계자는 "1만원 안팎의 생활용품 가공식품 세트가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불황기에 맞는 올 추석엔 저렴하고 실속 있는 생활용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2만∼3만원대면 장만할 수 있는 와인 세트도 위스키를 밀어내고 주류 매장의 인기 품목으로 등장했다. 실속이 있어 주부들이 선호하는 멸치세트도 올 추석 히트상품으로 꼽힌다. ◆생활용품·건어물 다시 뜬다 한때 선물 매장에서 서자 취급을 받았던 생활용품 세트가 각광받고 있다. 생활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치약 칫솔 비누 등으로 구성된 생활용품 세트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면당했던 1만원 안팎의 세트가 특히 인기다. 이마트에선 LG생활건강과 태평양이 내놓은 9천9백원짜리 생활용품 세트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는 '유니레버 미용세트 EM-5'. 역시 생활용품이다. 가격이 1만4천5백원인 이 상품은 샴푸 린스 보디로션 보디클렌저 등으로 구성됐다. 홈플러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1만원 안팎의 중저가 생활용품 세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화려한 느낌이 없어 외면당했던 멸치도 눈길을 끈다. 올해는 멸치가 많이 잡혀 가격이 저렴한 편. 괜찮다 싶은 건어물 세트도 4만∼5만원대면 살 수 있다. 롯데백화점 김선광 식품매입팀장은 "멸치와 김을 묶은 건어물 세트가 기업체 특판용으로 많이 나가 올해는 예년과 달리 멸치 매장을 따로 꾸몄다"고 말했다. ◆실속있는 건강상품 인기 비싼 위스키 꼬냑 대신 와인이 잘 나가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와인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데다 위스키나 꼬냑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와인은 가족끼리 즐길 수 있는 선물이기도 하다. 위스키나 꼬냑 세트는 10만∼20만원대인 반면 와인 세트는 2만∼3만원대에 불과하다. 불황기에 적합한 실속 상품인 셈이다. 현대백화점 본점 와인 매장의 장경윤 매니저는 "지난해 추석엔 주류 매출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였는데 올 추석에는 45%까지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위한 건강상품은 이색적인 것들이 잘 나간다. 이마트에서 생활용품 세트 다음으로 잘 나간다는 상품은 '참숯 자수 옥매트 더블 사이즈'다. 가격은 9만8천원. 이마트가 시중가보다 40% 정도 저렴하게 내놓았다는 기획상품이다. 현대백화점이 준비한 유기농 세트도 잘 나가는 이색 상품이다. 올리브유 와인식초 등 건강식품으로 꾸려졌다. 가격은 5만원 안팎으로 전통적 명절 선물인 정육 굴비 건식품에 비해 싸면서도 받는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선물로 꼽힌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