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7시 무렵에 다음날자 가판 신문이 배달되면 직원들은 가위 또는 칼을 들고 신문이 놓인 탁자로 모여든다. 각자 맡은 신문을 펼쳐들고 자기 부처 관련 기사를 찾아내 가위로 오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문제가 있는 기사에 대해서는 해당 언론사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정정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부처에 '가판 구독 금지령'을 내리기 전까지 어느 부처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청와대는 지난 3월 이같은 행태가 언론의 '권력기관화'를 부추긴다며 가판 구독을 전면 금지시켰다. 대신 이튿날 최종판을 갖고 '오보'나 '악의적 보도'를 가려내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을 요구하거나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원칙 대응'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같은 대통령의 지시는 일부 부처에 '더없는 복음'이 됐다. 가판 챙기느라 밤늦게까지 일할 필요가 없어졌고,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는 다음날 느긋하게 '악의적 보도' 딱지를 붙여 대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정이 딱한 부처들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오후 6시 무렵부터 공보관실 직원들을 동원해 각 신문사가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지면서비스(PDF)를 검색하면서 가판 뉴스를 챙기는 부처가 하나둘씩 늘고 있다. 심지어 '살짝' 가판을 사서 주요 언론의 보도내용을 미리 챙기는 부처도 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질문에 "우린들 그러고 싶어서 하겠느냐"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온다. 이들 부처는 왜 청와대의 추상같은 지시에도 아랑곳없이 '관행 불변의 법칙'을 떨쳐내지 못하는 걸까. 다음날 아침 기사를 미리 알고 싶어하는 기관장의 조바심 때문이라면 애교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오보 발굴 실적'을 높이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공보관실 직원들이 '전쟁'으로 내몰리는 것이라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요즘 정순균 국정홍보처 차장은 각 부처를 돌며 '언론사들의 왜곡 실태와 정부의 대응 방법'에 대해 강연하기에 분주하다. 언론보도의 왜곡은 물론 바로잡혀야 하지만,'전쟁을 위한 전쟁'에 공무원들이 내몰리고 있는 건 아닌지도 따져볼 일이다.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