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국민소득 2만달러'라는 비전을 내걸고 개인,기업 및 정부 등 모든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낡은 제도나 관행을 개혁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새 노사모델에 관한 문제로 정부 재계 노동계에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지난 1일 신용보증기금이 국내 최초로 임금피크제(신보는 정년 3년 전에 직무를 전환한다는 점에서 워크셰어링제로 부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제도 도입 후 금융권이나 기업들로부터 벤치마킹을 위한 방문과 자료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 강요된 명예퇴직으로 얼마나 많은 개인과 조직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신보가 이번에 도입한 제도는 직원이 정년에 도달하기 3년 전부터 기존에 수행하던 지휘 통제나 정책 판단 중심의 업무를 내놓고 채권추심 소액소송 경영컨설팅 등 오랜 경험을 필요로 하는 별정직으로 직무를 전환하고,임금도 업무의 중요성과 생산성을 감안해 연차적으로 피크 때 임금의 75%,55%,35%로 감소시키는 대신 정년(58세)을 보장해 준다. 정년 이후에는 본인이 희망하고 실적이 양호한 경우 연단위 계약직으로 최대 3년까지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즉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다소 줄이더라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명퇴시키지 않고 정년까지 함께 간다는 공동체 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다. 이 제도에 대한 필자의 구상은 사실 아주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작년 6월 이사장으로 취임해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 이후 1백85명의 직원들이 단지 나이 때문에 전문성과 능력에 관계없이 명예퇴직을 당했고,조직에 남아있는 직원들도 명퇴에 대한 노이로제로 안절부절못하는 등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직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새로운 인사·급여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해 노사협의 안건으로 상정했고,이때부터 1년간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이 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한 달 가까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개별기업의 경쟁력 강화나 국가·사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첫째,노사간 이해를 절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재 재계는 능력·업적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연봉제를 선호하고 있으나 노동계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업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하면 기업으로서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고,직원들은 정년까지 일할 수 있어 서로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노사간 이해절충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제도 실시 후 반응을 조사한 결과,대상자나 가족들이 크게 반기고 있다는 사실은 노사 모두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둘째,고령화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금년의 경우 생산가능인구(15∼64세) 8.6명이 65세 이상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2030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 2.8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감안할 때 50대의 직원도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근로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임금피크제 또는 워크셰어링제는 많은 교육비를 투자해 양성한 인적자산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노령인구를 부양할 사회적 비용을 분담한다는 점에서도 고령화시대를 대비하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실업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업은 가정궁핍과 사회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이 제도는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비용지출이 수반되는 중장년 실업자를 줄이고,절감된 예산으로 신규 인력을 채용할 경우 청년실업 해소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가 2만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 향상이라는 선결과제가 남아있다. 더구나 고령화,청년·중장년 실업 등으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때에 임금피크제가 조직과 직원,사회와 정부 모두에 윈윈(wiw-win)할 수 있는 새로운 고용 및 임금시스템으로 성공리에 정착돼 우리 사회의 불안과 갈등을 씻어내고 상생의 길을 여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