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생 12명이 뭉쳤다. 경북사대부고 28회 동기들. 1인당 1천만원 이상 형편이 닿는 대로 모았다. 모두 1억5천만원. 횟집을 내기로 했다. 점포 운영은 장사 경험이 있는 두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장사가 잘 돼 이익이 나면 지분율에 따라 배당을 하고 후배들을 위해 모교에 장학금도 기부하기로 뜻을 모았다. 생각만큼 쉽진 않았다. 첫걸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1억5천만원으로는 목 좋은 곳에 점포를 얻을 수가 없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물색한 끝에 서울 대치동 포스코빌딩 근처 후미진 곳에 있는 점포를 얻었다. 일대에는 샐러리맨들이 즐겨찾는 음식점과 술집들이 몰려 있다. 조금이라도 경쟁력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다. 언덕배기 낡은 건물 2층. 좁다란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강구 미주구리'(02-568-9430)가 나온다. 식당 자리로는 낙제점이다. 원래 맥주를 파는 곳이었다. 1년에도 몇번씩 주인이 바뀌었다. 오죽 했으면 '마귀집'이란 별명이 붙었을까. 이곳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임대료(보증금 4천만원, 권리금 3천3백50만원, 월세 3백만원)가 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주구리'가 들어선 뒤 '마귀집'은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엔 포스코 뒤편에 가게를 내려고 알아봤죠. 그런데 보증금이 평당 1천2백만원이라고 하더군요. 메뉴 특성상 50평은 돼야 하는데 돈이 턱없이 모자랐죠." 횟집 운영을 맡은 윤재환 미주리수산 사장(43)의 얘기다. 윤 사장은 자금이 부족해 후미진 곳에 점포를 차릴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있었다. "남들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메뉴로 차별화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이름도 생소한 미주구리. 일본말에서 유래됐다. 우리말로는 '물가자미'라 한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과 포항을 잇는 해역의 수심 1백50∼2백m에 사는 물고기다. 미주구리는 이곳 방언이다. '물가자미'라고 하면 경북 동해안에선 알아듣지 못한다. 이 가게의 주력상품은 미주구리를 뼈째 잘게 썬 '세코시'.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다 계절 따라 청어 전어 병어 등을 섞은 막회를 곁들여 내놓는다. "처음 온 손님들은 '미주구리가 뭐냐'고 꼭 물어요. 그런데 두번째 올 때는 친구들을 데려와 미주구리가 어떤 생선인지, 어떻게 먹는지 큰소리로 설명해 주죠." 이 가게의 또 다른 별미는 물회. 미주구리 회를 야채 고추장과 함께 큰 그릇에 넣고 냉수를 적당히 부어 만든다. 경북 동해안 지방의 고유 음식이다. 윤 사장의 부인 최근화씨(42)는 손님 옆에 꿇어앉아 물회 만드는 법을 설명해 주곤 한다. "미주구리가 뭔지 궁금해 들어왔다가 단골이 된 손님이 참 많아요. 제가 사투리로 물회 만드는 법을 설명해 주면 고향의 정취가 느껴진다면서 손님들이 무척 좋아해요." 최씨는 "과메기(청어나 꽁치를 얼렸다 녹였다 반복한 후 말린 것)나 도루묵 찜, 가자미 찜도 다른 횟집에서 맛보기 힘든 우리 가게 별미"라고 자랑했다. 미주구리 횟집이 문을 연 시기는 작년 11월말. 지금처럼 불황이 한창인 때였다. 그런데 사업 첫달인 12월부터 흑자를 냈다. 투자한 동창들도 깜짝 놀랐다. 물론 송년모임 덕을 봤다. 하지만 손님들이 몰려온 것은 무엇보다 차별화된 메뉴 때문이었다. 지금은 평일이든 토요일이든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상권 특성상 평일엔 회사원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토요일엔 인근 주민들이 몰려온다. 수원 인천 등지에서도 찾아오기도 한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주구리를 맛보이기 위해서다. 일요일 공휴일엔 쉰다. 강구 미주구리는 40여평의 작은 공간에서 요즘도 한달에 3천만원 이상의 매상을 올린다. 불황과 비수기가 겹친 시기란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다. 12명으로 구성된 '미주리수산 이사회' 신재각 이사회장은 "9월에는 그간의 장사 손익을 결산해 배당금과 모교 기부금 규모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