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대변인 만큼 기자들로부터 시달림을 받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내외 국가정책은 물론이고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질문을 받아넘겨야 하고 때로는 재치와 순발력을 시험받기도 한다. 대변인은 기자와의 기(氣)싸움에서 밀리지 않아야 하고,웬만한 것은 모두 다 그 맥을 뚫고 있어야 한다. 백과사전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결코 과장은 아닌 듯하다. 대변인은 무엇보다 대통령을 대신하기 때문에 자신없는 태도를 보인다거나 거짓말을 하게 되면 바로 대통령이 상처를 받게 된다. 대통령의 마음을 읽으면서 뉴스를 생산하고 그 방향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대변인이었던 윌리엄 로브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그는 언론으로부터 '대통령의 분신'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반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공보비서였던 로널드 지글러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3류 주거침입'이라고 호도하려다 망신만 당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백악관 대변인이 브리핑하는 사안들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는 것이어서 좀처럼 실수가 인정되지 않는다. 노련한 기자들의 유도질문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명대변인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입'역할을 하면서 유능한 대변인으로 인정받았던 애리 플라이셔가 엊그제 대변인직을 사임했다. 고별연설을 할 때 기자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그는 인기가 있었고 신망을 얻었다. 플라이셔는 떠나면서도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미국이 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질문할 수 있는 언론자유와 이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정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새정부 출범과 함께 브리핑제를 도입하면서 청와대 대변인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아직은 일방적인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이 짙은 게 사실이다. 박수 속에 아쉽게 떠나는 대변인이 기다려진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