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국내 기업보다 주목받는 곳이 외국기업이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이나 경제단체들의 행사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주요인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엄청난 관심이 쏠린다. '외국기업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는 게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다. 글로벌시대에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데는 올들어 벌어진 일련의 상황이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이나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등 한국내 주요 외국 경제단체들은 매년 통상 및 기업환경 등에 대한 건의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한국정부에 제출해 왔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 관계자들과 수시로 만남을 갖고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도 올해 외국기업의 목소리가 특별히 부각된 이유는 경제가 안좋은 상황에서 정부가 외국인직접투자(FDI)를 강조해온데다 화물연대 파업, 철도파업 등 대형파업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네덜란드 노사모델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청와대발 뉴스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곧바로 반격을 받으며 최대 이슈를 만들어냈다. 언론은 외국인들의 정부 비판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끌어내기 위해 경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한국투자 철회사례를 소개해달라'는 등의 주문도 여러차례 나왔다. 한 외국기업 임원은 답변 과정에서 "외국인투자 유치가 한국의 동북아 경제중심국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라며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땅에 살면서 오랫동안 한국을 경험한 외국기업의 목소리는 분명 참고할만 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성공적 노사문화와 건강한 기업풍토를 일궈낸 외국 사례도 돌아봐야 한다. 외국기업은 이미 한국 경제의 한 주체로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2002년 1-11월 기준으로 국내 100대 수출기업 중 외국인 지분율 50% 이상인 외국인투자기업은 16개였고 연간 수출액이 1억달러가 넘는 외국인투자기업도 17개나 됐다. 수출상위 100대 외국인 투자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 선에 육박했다. 외국기업은 이제 이방인이 아니라 한국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시각을 빌려 우리 문제를 바라보더라도 풀이법까지 전적으로 외국기업의 목소리에 기대서는 안된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남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우리의 허물을 보고 선진국 사례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좋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사회에 맞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공기업 간부는 "훌륭한 모델이 없어서 지금까지 문제를 풀지 못했냐"고 반문했다. 다른 기업체 관계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는 교육과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노사문제도 풀릴 수 없다. 뒤집어 생각하면 두 가지 문제가 풀리면 노사분야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주택비와 교육비 때문에 임금인상과 안정적인 직장은 복지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럴 때일수록 언론은 외국기업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해서도 부풀려서도 안된다는 생각이다.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우리 사회에 전달하고 함께 해답을 고민하는 게 언론의 몫이 아닐까 싶다.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ko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