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의 남동쪽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정부가 세계은행과 공동 주관으로 지난 6월 13일부터 나흘간 개최한 최고위 정책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마다가스카르 대통령, 총리 이하 전 각료 등 고위 공무원, 그리고 하루는 상하 양원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세미나에서 연사로 초빙된 세계 각국 경제개발 전문가와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들은 이 나라의 주요 경제개발 정책과제에 대해 다양한 강연을 하고 그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58만㎢)인 마다가스카르는 70여년에 걸친 프랑스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1960년 독립국가가 됐다. 그러나 독재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됐고 그들이 선택한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 결과 광대한 토지와 부존자원의 이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1인당 국민소득 2백50달러의 세계 최빈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 동안 두 대통령,두 정부,두 중앙은행이 병존하는 정치 혼란기를 거쳐 92년 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이 나라는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빈곤의 극복'을 1차 목표로 집중적인 경제개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세미나는 이러한 노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한 세미나 참석자들은 우리나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빠른 기간 안에 경제 발전을 이루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들에게 불과 한 세대 남짓한 동안 백달러 미만의 최빈국에서 만달러 수준의 공업국으로 변모한 한국은 진정 벤치마크하고 싶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경제의 '성공신화'를 시작으로 성공의 뒤안길에 축적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이로부터 극복해야 할 도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깊은 공감을 표시했고 한편으로 많은 질문도 던져왔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필자가 그들에게 주려고 한 기본 메시지는 비교적 간단했다. 그것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경제 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선택과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면서 이를 지속적으로 밀고 가는 국가지도력, 즉 리더십의 중요성'이었다. 우리나라의 50년대 후반을 연상케 하는 이 나라의 경제현실, 그리고 40여년의 지각 끝에 60년대에 우리가 추진했던 개발 노력을 정열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이 나라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후 전연 달라진 경제의 모습을 이 나라에서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기는 어려웠다. 광대한 영토,엄청난 자원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서 경제다운 경제를 이룩해가는 과정에서 해결돼야 할 과제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고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추진해 나갈 국가지도력에 대한 믿음을 당장은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국민경제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였다. 세미나가 개최된 장소는 1979년 북한의 김일성이 선물로 지어주어 전 대통령까지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북한은 다량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라늄에 대한 관심과 대 아프리카 외교의 일환으로 이 나라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 나라 역시 전 대통령의 경우 세 번이나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북한이 마다가스카르의 사회주의 정권을 위해 지어준 대통령궁에서 남한의 자유 시장경제주의자들이 대통령을 비롯한 이나라 최고 지도자들에게 시장경제와 국제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토론하는 광경을 죽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세계 각국이 다투어 이미 폐기처분했거나 처분중인 사회주의의 망령이 뒤늦게 우리나라에서는 되살아나서 '진보'라는 이름으로 정치 경제 통일 노사 복지 교육의 각 분야를 휘젓고 우리의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왔으니 개탄할 일이다. 해결해야 할 경제과제의 수준은 전연 다르지만 필자가 마다가스카르 지도자들에게 강조한 기본 메시지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물음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선택을 하고 있으며 국가지도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이를 일관성 있게 밀고 가고 있는가?" ihkim@shin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