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비상이다. 소비가 줄어 상점들의 매출이 뚝 떨어졌고,앞날이 불안한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공장은 물론 사옥까지도 내다 파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 교과서조차 맞지 않게 됐다. 필자가 배웠던 경제학 교과서에는 '국민소득 순환도'라는 것이 있었다. 가계는 돈을 벌어 저축을 하고,기업은 그 돈으로 투자를 해서 수익을 가계에 돌려준다는 내용의 그림이다. 이제 이 국민소득 순환도는 설명력을 완전히 잃었다. 기업들은 투자 대신 은행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오히려 가계가 그 돈을 빌려다가 부동산에 투자하고,신용카드 빚을 늘리고 있다. 부동산버블에 대한 우려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도 바꿔야 할 판이다. 교과서쯤 틀린들 무슨 대수겠는가. 걱정거리는 실업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다보니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지 않아 대학생들이 졸업을 해도 갈 곳이 없다. 지난 5월 대졸실업률은 작년 동기 대비 23.7%나 늘었다. '청년실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20대의 실업률도 작년 5월보다 14.4%가 증가했다. 그래서 제 날짜에 졸업하기보다는 휴학을 택하는 젊은이들마저 늘어나고 있다.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청년들이 부모가 벌어 놓은 돈을 타 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업이 이렇게 늘어나는 한 사회안정도 기약하기 힘들다. 제대로 된 시장경제라면 노동시장에도 자동안정장치가 작동한다. 실업자가 늘면 임금이 낮아지고,그 결과 기업이 고용을 늘려 실업은 다시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자동안정장치를 잃은지 오래다. 이름만 시장경제일 뿐 실질적으로는 경쟁이 사라진 담합경제가 돼 버렸다. 실업은 느는데 임금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말도 안통하는 외국인노동자에 의존해야 한다. 대기업들마저 싼 임금을 찾아 중국으로 투자처를 옮기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실업은 느는데도 임금은 상승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물론 임금의 경직성을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상당부분 줄일 수는 있다. 노동시장에 만연된 담합 구조를 없애면 된다. 그리고 임금교섭을 개별기업 단위로만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최소한 기업단위의 평균임금은 각 기업의 생산성에 비례해서 책정될 것이다. 기업간의 가격 담합이 그렇듯이,노동자간의 담합도 임금의 경직성을 높여서 실업을 촉진한다. 하지만 자영업자인 지입차주들까지 근로자로 보고 있는 현 정권 하에서는 노동자간 담합의 불법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노동자는 임금을 낮추려 하지 않으니 닥쳐 올 일은 '실업 대란'뿐이다. 정부는 외국자본을 유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이 보인다. 공장부지 분양가 인하,수도권 규제 완화 등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여러 가지 특혜들을 외국자본에 제시하고 있다. 외국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투자가 많이 이루어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불법파업 앞에 법도 힘을 못쓰는 나라에 그런 정도의 특혜를 바라보고 들어올 외국자본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또 그렇게 투자가 아쉬운 터에 출자총액제한이니 수도권 규제니 하며 국내자본의 투자를 막을 필요성이 그리 큰 지도 의문이다. 국내자본이든 외국자본이든 자본은 똑같은 자본이 아닌가. 특혜는 주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차별적 규제는 하지 않는 것이 토착자본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눈 높이가 매우 높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른바 3D업종의 중소기업에 가느니 차라리 실업을 택하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율이 높은 것도 높은 눈 높이의 증거다. 돈이 없더라도 카드를 써야 할 만큼 기대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 국민의 높은 기대수준을 무엇으로 만족시키겠는가. 기대에 맞는 직장에 취직을 하고,빚을 지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을 벌 수 있게 하려면 활발한 투자와 높은 경제성장률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투자 촉진을 위한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chunghoki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