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개발 문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수년 계속되는 식량난과 그로 인한 주민들의 대량 탈북사태,외화벌이를 위한 마약·무기 밀거래,집권세력의 통치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되고 있는 비인권적 행위와 외부세계에 대한 위협행위 등이 우리나라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북한체제와 닿아 있어 해결이 매우 어렵다. 우리가 북한 때문에 받는 부담 측면만 생각한다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해소하고 싶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허리띠를 조이면서 형성한 재화와 정신적 문화적 자산의 보호문제를 감안할 때 '북한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대하려는 북한엔 통치세력과 함께 동족인 주민도 있어 대응수단 선택이 크게 제약된다. 지금 한국경제의 신용도는 경제 펀더멘털이나 기업 경쟁력 및 투명성보다,북한으로부터 오는 위협의 크기와 그 해결 가능성으로 결정되는 상황이다. 즉 우리 경제의 신용도는 경쟁력 제고뿐만 아니라 북한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관리해 내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북한주민은 분명 동족이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외부와 폐쇄되어 있으면서 이념과 체제,사고방식과 문화가 달라졌다. 다른 나라와의 대화나 협력 방식 및 그 관행도 차이가 크다. 더욱이 북한 집권세력은 극도로 체제 방어적이어서 이것을 설득하고 개혁 개방을 유도해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피해 갈 상황도 아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려고 할 때 국내의 제도적 여건 개선만으로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즉 투자유치를 통한 경제활성화도 경제문제가 아닌 남북문제,즉 북핵문제의 해결 여하에 직결되는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가 북한발(發) 여러 가지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는다 해도,우리의 대북대응수단이 외부의 구미에 맞지 않을 때는 역시 어렵다. 최근 한·미관계에서 보았듯이,우리의 평화적 점진적 대응방안이 나라안팎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전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군사적 방법에 의한 대북대응이 가져다 줄 결과의 당사자다. 한반도 주변국들의 고려사항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체제의 비합리적 비민주적 비이성적 행동과 미국에 대한 위협가능성이다. 미국은 9·11테러사건 이후 소규모 테러집단도 자국에 큰 위협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극단적 반미감정으로 채색돼 있는 북한이 핵을 가지려고 할 때 미국의 대응방식을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절충한 것이 평화적 해결 뒤에 '추가적 조치'의 항목을 붙였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해석도 다른 것 같다. 즉 우리정부는 '평화적 해결'을 핵심사항으로 여기는 느낌인데,미국은 '추가적 조치'를 핵심사항으로 여기는 듯하다. 또 한 차례의 한·미 이견이 내다보이는 대목이다. 대북문제에 대해 우리와 국제사회가 소홀히 하는 부분이 있다. 문제발생의 근원지는 북한인데 북한을 뺀 북한문제를 다루는 듯한 느낌이 든다. 미국도 한 차례의 3자회담을 갖고 난 뒤 모든 것을 다 안 듯이 여러 가지 대응책을 독자적으로 쏟아내고 있고,일본은 한 차례의 북·일회담도 없이 전쟁에 대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북한문제가 대두되길 기다린 듯이,과거에 하고 싶어도 못했던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 치우고 있다. 우리정부는 어떤가. 한·미정상회담도 중요하고 한·일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정작 남북한 최고위급이 만나 핵문제와 북한으로부터 발생되는 문제들의 심각성을 공유하고,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할 시점인데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남북 각급회담에서 별 권한도 없는 북한대표와 만나 쇠귀에 경 읽듯 일방적 설득만 하고 와서는 '할 말 다 했으니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는 눈치다. 북한문제는 각국이 인류 공통의 관점에서 정직성과 성실성을 갖지 않고 자국의 이해관계에만 집착하여 문제를 대하면 해결 방안이 나올 리 없다. 특히 북한문제를 '민족문제'로 받아들이는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 우리 내·외부의 정직성과 정확한 명분은 행동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mjcho@kie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