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서 박 사장의 장안종합열처리는 무섭게 성장했다. 아내와 함께 직원 1명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한 지 2년만에 직원이 10명으로 불었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박 사장은 연구개발(R&D)에 눈을 떴다. 열처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대학 연구소 세미나 등 어디든지 쫓아다녔다.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또 물었다. 당장은 별 걱정없이 사업이 잘 되고 있었지만 몇 년후를 준비하려면 새로운 기술정보를 배우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특히 함께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사장이 자기 배만 채우지 않고 투자를 계속하고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애쓴다는 믿음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R&D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자신감을 얻은 박 사장은 청주에 열처리 공장을 하나 더 지어 성신양회 자회사였던 단조공장에서 월 수억원어치씩 쏟아져 나오던 일감을 따냈다. 창업 후 첫번째 좌절은 1992년에 찾아왔다. 91년 두산전자 페놀 유출 사건으로 환경오염 단속이 전국에 걸쳐 진행되고 있던 중 박 사장의 청주공장 근처에 있던 도금공장에서 청주 무심천에 폐수를 방류하다 발각되는 일이 발생했다. 감독당국은 박 사장의 공장에까지 찾아와 조사를 벌였다. "우리 공장은 환경오염과는 거리가 멀었죠.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졌어요.임대한 공장이 폐음료수병을 세척해 재활용하던 새마을공장으로 허가를 받았는데 열처리 공장을 하고 있으니 정식으로 용도변경 절차를 거치라는 거였죠." 용도변경을 하려면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3억원이나 든다고 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도 운영할 수 있는 열처리 공장을 청주에서는 왜 못하느냐"고 따져봤지만 당국에선 "법이 그렇게 돼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아파트 서너채 값을 날리고 공장을 포기해야 했다. 박 사장은 소주 한 상자를 사다가 직원들과 함께 마시면서 "모두가 내 잘못이다. 부천 공장은 잘 되고 있으니 함께 가서 다시 시작하자"고 재기 의지를 다졌다. 부천으로 돌아온 박 사장은 계속해서 신기술 정보와 R&D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진공 열처리 기술과 기계를 알게 된다. 당시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던 화학약품을 이용한 금속표면 열처리 기술을 뛰어넘는 신기술에 확신을 갖고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서 대당 3억원짜리 진공 열처리 기계를 들여왔다. 결과는 엄청난 히트였다. 1년만에 거금을 벌어들인 그는 95년 안산에 건물을 사서 둥지를 옮기고 회사명도 케이피티로 바꿨다. 케이피티는 승승장구했고 박 사장은 지난해 4월 케이피티를 코스닥에 성공적으로 등록시켰다. 하지만 박 사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상장 기업 사장'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국내 최대 알루미늄 압출업체 동양강철이 그의 도전 대상이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