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FTA로 인한 농가피해 대책을 보완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농민들의 반발과 내년 총선을 의식한 탓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목소리가 거세질 것이 불을 보듯 분명한데, 국정을 책임진 정치권이 이렇게 눈치만 본다면 개방정책 추진이 전반적으로 큰 차질을 빚을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물론 FTA가 농업부문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고 국가경제가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처지에선, FTA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FTA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 대만 한국 뿐이어서 더욱 그렇다. 또한 정부가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산업을 언제까지 계속 보호해줄 수는 없는 만큼, 차라리 FTA를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한·칠레 FTA 협상과정에서 국내농업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어느정도 갖춰졌다는 점을 감안하면,대책보완을 내세워 비준안 처리를 연기하려는 정치권 움직임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우선 농가소득에서 비중이 큰 쌀 사과 배 등은 개방품목에서 빠졌고, 낙농제품과 고추 마늘 양파 등의 개방일정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 아젠다(DDA) 협상 이후로 미뤘으며 논란의 대상이던 포도에 대해선 계절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게다가 농가피해가 큰 경우 언제든지 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돼 있다. 바로 이런 내용의 한·칠레 FTA를 피해대책 미비를 이유로 비준을 미룬다면 도대체 어떤 나라와 FTA를 맺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국정과제인 '동북아 중심국가'를 달성하자면 한·미 투자협정 경제특구 한·중·일 FTA 등 개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첫번째 FTA인 한·칠레 FTA는 향후 개방정책의 진로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봐야 옳다. 협상 상대국인 칠레는 FTA를 이번 달에 비준할게 거의 확실한데 우리만 무기연기한다면,신뢰상실은 물론이고 외교상으로도 예의가 아니다. 여야는 공연히 시간을 끌지 말고 한·칠레 FTA를 이번 임시국회에서 비준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