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하루 아침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에서 세종 때의 조회(朝會)를 구경했다. 또 그 이틀 앞서 5월 30일 저녁에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숙종 때의 기로연(耆老宴)을 감상했다. 이 두가지 행사는 성격이 서로 다르다. 국립국악원의 현대식 건물 예악당에서 재현된 숙종 때의 노인잔치(기로연)는 1719(숙종 45)년 실제 행사를 공연예술로 재현해 낸 것으로,원래 '기사계첩(己巳契帖)'이란 자료에 당시의 그림과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하지만 세종 때의 조회는 세종이 임금이던 1418년부터 1450년까지 거의 매일 있었던 행사라 할 수 있지만,특별히 그에 관한 그림이나 기록이 있지는 않다. 숙종의 노인잔치는 5일 동안의 행사로 일단 끝났다. 국악관계 여러 기관이 참여하는 행사인데다 그 비용 때문에 반복해 공연하기는 어려울 성싶다. 하지만 세종 때의 조회는 '상참의(常參儀)'라는 이름 아래 매주 말 같은 행사가 계속된다. 이미 여러 해 동안 서울 몇곳의 궁궐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문장 교대의식'은 외국인과 내국인들의 볼거리로 자리잡았고,비슷한 의식이 지방에서도 시행돼 인기다. 매주 토요일 오후 서울 인사동에서 벌어지는 '포도대장과 순라군들'은 종로구청이 주최하는 이벤트로,18명의 조선시대 경찰관들이 6모 방망이와 오랏줄을 들고 범인을 체포하고 재판해 형을 집행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런 '역사 다시 찾기 운동'은 지금 전국 곳곳에서 여러 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옛 수도였던 경주 공주에서의 축제가 있는가 하면,진주의 논개와 남원의 춘향을 주제로 한 행사도 있다. 궁중과 민간 의례(儀禮)의 재발굴은 그야말로 '시대 풍조'가 되어 있고,TV방송은 열심히 역사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게 대충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지방마다 기관마다 이벤트로 만들어 눈요깃거리로 내놓겠다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충실한 고증(考證)을 거치며 진실해지면 우리 역사의 어설픈 구석구석을 메워 나가는 데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 때 사정전에서 행했던 상참의는 우리에게 좋은 거울이 될 수도 있다. 사정전(思政殿)이란 '정치를 생각하는 건물'이란 뜻이다. 경복궁 거의 모든 건물이름은 조선왕조 개국의 공로자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생각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이 건물을 '사정전'이라 지었을 것이다. 옛날 임금은 정말로 바쁘게 살았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집안 어른에게 문안 올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매일 대신들과 아침회의를 하며 정사를 보게 된다. '조회'라지만 설날이나 동지(冬至),그리고 매달의 삭(朔=1일) 망(望=15일)의 조회는 조하(朝賀)라 하여 근정전에서 대규모로 실시했다. 상참의란 근정전 뒤의 훨씬 작은 궁궐인 사정전에서 거의 매일 실시됐던 세종 때의 조회다. 이번에 재현해 본 상참의에는 이름있는 탤런트도 출연해 당시 조회에서 논의됐던 사안들을 토론하는 장면도 보여주었는데,그 내용이 마이크를 통해 구경꾼들에게까지 잘 들리도록 되어 있다. 옛 왕과 신하들은 아침마다 무엇을 토론했나를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왕은 이것 말고도 매일처럼 경연(經筵)을 열어 당대 대표적 학자들의 강의를 듣고 공부했다. '논어'에서 말한 배움(學)과 생각함(思)을 함께 하려는 노력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음을 보여준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罔)하고,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태(殆)하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논어 爲政편')는 말이 그것이다. 망과 태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망은 배우기만 하고 생각을 함께 하지 않아서는 배운 것이 단편적 지식으로 남을 뿐 제대로 사리 파악이 어렵다는 뜻이다. 태는 사람이 생각만 하고 공부를 해서 뒷받침하지 않으면 위태로운 생각, 즉 독선과 독단에 빠지기 쉽다는 말이다. 요즘 우리 세태가 그렇고,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 같아 걱정이다. 모두들 주말 사정전에 나가 '생각하는 정치'를 생각해 봄이 어떨지?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