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연휴 첫날인 6일 새벽 1시. 동대문 패션타운은 야간 쇼핑객들로 북적거린다. 동대문운동장 동쪽 도매상권으로 가는 4차선 도로는 차량으로 꽉 막혔다. 서쪽 소매상권의 두타 밀리오레 헬로에이피엠 앞 길에는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오가고 있다. 패션몰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댄스음악이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얼핏 보기엔 활기 넘쳤던 90년대 후반과 비슷하다. 그러나 들여다 보면 딴판이다. 도무지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밀리오레 상인은 "손님들이 집었다 놨다만 할 뿐 도무지 사가질 않는다"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신평화시장 뒷골목엔 지게꾼 대여섯명이 잡담을 하고 있다. "바쁜 시간이 아니냐"고 묻자 "요즘 바쁜 시간이 어딨냐?"고 대뜸 반문한다. 동대문 상인들은 "심각하다"고들 말한다.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불황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쟁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 더 큰 문제로 꼽힌다. 90년대 후반 동대문 의류가 각광받기 시작했던 것은 양질의 옷을 싸게 팔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은 동대문 일대 공장에서 옷을 직접 만들어 싸게 판매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중국 원단을 쓰거나 중국에서 봉제하지 않고는 수지를 맞추기 어렵게 됐다. 무엇보다 원단 경쟁력이 약해진 것이 문제다. 3,4년 전만 해도 동대문 상인들은 대개 대구에서 원단을 가져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산을 쓰는 상인이 늘기 시작했다. 값이 국산의 절반에 불과해 이익이 많이 남기 때문이었다. 이 바람에 원단 업체들이 궁지에 몰렸고 최근 S사 E사 등 제법 큰 회사들이 부도를 맞았다. 봉제공장의 사정도 원단 못지 않게 심각하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동대문 인근 주택가엔 밤낮으로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에도 재봉틀 앞에 앉겠다고 들어오는 인력은 거의 없었다. 그 바람에 빈 재봉틀엔 외국인 근로자들이 앉기 시작했고 이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자 상인들이 봉제 일감을 앞다퉈 중국에 넘기게 됐다. 그러다보니 순발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전에는 패션쇼에서 선보인 디자인이나 텔레비전에 인기 연예인이 입고 나온 새로운 옷은 사나흘 뒤면 어김없이 동대문 매장에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일주일 이상 걸린다. 적당한 원단과 봉제공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옷 샘플 제작비도 최근 3년새 5만원 안팎에서 8배인 40만원선으로 뛰었다. 상인들은 동대문이 '중국옷 판매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한다. 상가를 둘러보면 원산지를 제대로 표시한 중국산 의류는 5벌당 1벌꼴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하나둘 발길을 돌리고 있다. 어느 나라 원단을 썼는지,어디서 봉제를 했는지는 몰라도 옷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 패션몰이 실시한 소비자 조사 결과는 동대문 패션타운의 경쟁력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패션몰이 지난 달 고객 5백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동안 이곳을 방문한 횟수가 줄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8.4%나 되는 반면 방문 횟수가 늘었다는 응답률은 14.4%에 불과했다. 동대문 의류에 대한 불만도 높게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의류를 사지 않은 이유를 묻자 남성복에서는 42.5%,여성복에서는 33.3%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격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지 않았다. 가격이 비싸서 구매를 포기했다는 응답 비율이 남성복에서는 22.5%,여성복에서는 33.0%나 됐다. 소비자들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은 품질에 비해 가격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요즘 백화점 할인점에는 이월상품이 잔뜩 깔렸다. 이런 상품은 세일이라도 하는 날엔 헐값에 팔린다. 그러니 동대문 옷이 싸게 느껴질 리 없다. 동대문 패션타운의 문제는 불황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 상인은 "중국 원단을 쓰고 중국에 봉제를 맡겨야만 하는 것이 동대문의 한계"라며 "드러내 놓고 말은 않지만 경쟁력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상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동대문 상인들은 올해 여느해보다 힘든 여름을 보내게 됐다. '체력'이 바닥나 더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여름 비수기를 맞고 있다. 해마다 여름에는 티셔츠 반바지 등 싼 의류만 팔린다. 특히 올해는 불황이 심해 상인들의 걱정이 크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